▲사자바위마치 사자가 누워 바다를 향해 포효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사자바위’(고봉포구)
박태상
몇 차례 백령도를 방문했지만, 이번 여행처럼 꼼꼼하게 섬을 완상한 것은 처음이다. 올 때마다 새로운 것이 보인다는 것은 여행객들에게는 묘미가 아닐 수 없다. 처음 백령도를 찾았을 때는 심청각이 인상 깊었고, 인당수가 두무진 포구 근처라는 데 감동을 받았다. 두 번째 방문 때는 유람선을 타고 백령도를 한 바퀴 돌면서 코끼리 바위, 형제 바위, 용트림 바위, 두무진의 선대암 등 창조주의 조형물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왜 배를 임대해서 바다 한가운데 가서 낚싯대를 드리우는지 알 것 같았다.
세 번째 백령도를 찾았을 때는 역시 두무진 포구에서 통일기원비를 거쳐 새로 생긴 관람로를 따라 선대암과 형제바위가 있는 서해바다를 가깝게 다가가 바라보는 비경이 너무나 좋았다. 대개 4~5월경 관광객들이 많았을 때 백령도를 왔었으나 이번에는 공무가 있어서 12월 초겨울의 차가운 바다를 찾았다.
'신의 조화던가 바위가 뒤틀려 최초의 생물을 빚어내다니
바람의 조화런가 깎여진 바위의 층층이 새 형상을 조각해내고
물의 신비던가 모습을 드러냈다 감추는 마술적 재미를 주고 있으니세상만사 새옹지마 잊을 것은 당장 잊어버리라고 소리치네.'- 박태상, <망각> 일부여름 바다에는 주체할 수 없는 '환희의 격정'이 밀어닥친다면, 가을 바다에는 은은한 간지러움이 몸을 휘돌아나간다. 그렇다면 겨울 바다는 어떤 감흥을 가져올까? 아무래도 겨울 바다는 시련 뒤의 애틋함을 던져주는 것이 아닐런지? 피부에 와 닿는 냉혹한 바람은 콧잔등을 시리게 만들고 새색시 볼 마냥 홍조를 띠게 유도한다. 호호 불면서 먹는 군밤과 호빵이 그리운 계절, 손을 따뜻하게 데워줄 온기가 없으니 시련 중에서도 혹독한 시련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손보다 더 살을 에는 듯한 차가움은 귓불에서 느껴진다. 귀의 일부분을 베어내는 듯 날카로운 자극이 스쳐간 후 계단의 끝을 밟으며 형제바위가 보이는 서해바다의 하얀 이빨 자욱을 만나게 되었다. 무릎이 으드득 거린다. 차가운 냉기가 발바닥부터 몸 위로 느껴진다.
한 번도 쉽게 땅을 밟아보지 못하게 하던 해신의 괴롭힘은 이번 여행에서도 계속되었다. 서해바다의 풍랑이 심해 인천연안여객터미널을 떠나는 순간부터 요동치고 몸을 가누지 못하게 했다. 처음 백령도를 찾았을 때는 짙은 안개로 인해 이틀 만에 출항을 했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돌아올 때 세찬 바람 때문에 예정된 배가 떠나지 않아서 할 수 없이 하루를 더 묵게 만들었다. 심청이의 노여움인가, 신의 조화던가? 하여튼 오묘한 신비의 공간이 백령도이다.
용기포신항으로 입항한 후 렌트카를 타고 공무를 수행하면서 3박 4일 동안 백령도 이곳저것을 찾아다녔다. 백령도의 진실된 아름다움은 '청홍백노초의 빛깔'에서 우러난다. 이번 여행을 '색을 찾아서-비경의 섬'으로 잡은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