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변호사
정대희
"죽 쒀서 남 줄 수 있어요."하승수 비례대표민주주의 연대 공동대표(전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는 여러 번 같은 표현을 반복했다. 절박하다는 뜻이다. 여기서 '죽'은 광장의 190만 촛불이 쏘아올린 박근혜 퇴진을 의미한다. '남'은 박 대통령 아래 호가호위했던 부패 기득권 세력이다. 하 대표는 "우리는 이미 승리했지만 순식간에 '내가 이러려고 촛불을 들었나' 자괴감이 들 수 있다"라면서 "박근혜 퇴진 이후를 준비하지 않으면 또 당한다"라고 경고했다.
하 대표가 지난 11월 28일 오후에 서울 마포구 '오마이뉴스 마당집'을 찾았다. 10만인클럽 회원이기도 한 그는 "박정희는 총칼로 권력을 잡았는데, 그의 딸 박근혜는 '사기'를 쳐서 선거라는 방법으로 권력을 찬탈했다"라면서 "둘 다 권력을 사유화한 쿠데타 세력"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 뒤 우려의 말을 쏟아 냈다.
과거 악몽 재연되나?"과거 악몽의 기억이 지금의 정치 상황과 묘하게 교차합니다."그는 최루탄과 지랄탄이 난무하는 거리에서 쟁취한 민주주의를 순식간에 반동의 역사로 되치기 당한 1987년 6월 항쟁 때를 떠올렸다.
"백골단 몽둥이 앞에서 100만 명의 넥타이부대와 대학생, 노동자들이 짱돌과 화염병을 들고 싸웠습니다. 전두환 독재에 맞서서 직선제를 쟁취했죠. 이번에는 촛불 들고 중고생들까지 거리로 나왔습니다. 일제 때 광주 학생운동, 4.19 혁명 때 학생들이 쏟아져 나온 것 같아 울컥했습니다. 촛불은 짱돌과 화염병보다 힘이 셌습니다. 검찰이 박근혜 게이트를 수사하고, 국회가 탄핵을 준비하는 것은 촛불의 힘입니다." 여기까지는 과거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광화문 광장을 밝히고, 무도한 대통령을 불사른 190만 촛불 혁명을 정치권 야합의 제물로 갖다 바칠 수 있다는 것이다.
"직선제, 그 과실을 따먹은 건 그 나물에 그 밥인 노태우였습니다. 1988년 총선에서 국민들은 여소야대를 만들었는데, 민정당을 중심으로 한 3당 야합으로 김영삼 대통령이 권력을 잡았습니다. 정계개편으로 정권을 찬탈했습니다. 결국 아이엠에프 경제위기까지 불러왔습니다.
그때와 비슷합니다. 여당의 비박계와 야당 일부, <조선일보> 등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개헌으로 뭉치고 있습니다. 권력을 향유하면서 헬조선을 만든 장본인들이 반성 없이 탄핵을 외치면서 권력을 재창출하려고 '헤쳐 모여'하고 있습니다." 헬조선 만든 자들이 개혁론자로 둔갑그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부역자들이 박근혜 꼬리 끊기를 하면서 개헌을 이야기하는 시스템 개혁론자로 신분세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새누리당 비박계와 국민의 당, <조선일보>의 움직임을 보면 반성해야 할 자들이 개헌에 비판적인 야당 대선 후보를 공격하면서 보수 재집권 시나리오를 치밀하게 가동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반동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첫 단추로 '선거법 개정'을 꼽았다. 그는 왜 긴박한 시기에 선거법 개정 깃발을 들었을까? 잠시 역사의 시계바늘을 2010년으로 돌려보자.
지난 2010년 12월 8일 오후 4시 15분경. 최근 대권 포기 선언을 하고 개헌 세력 규합 행보를 보이는 김무성 당시 한나라당 원내 대표는 국회 본회의장을 떠나갈 듯이 큰 소리로 외쳤다.
"다 나와!" "다 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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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 예산안 날치기 통과, 원천 무효!" 2011년도 새해 예산안이 여당의 강행처리 끝에 가결됐습니다.
ⓒ 오대양
국회판 막장 드라마 신호탄이자 돌격명령이었다. 여당 국회의원들은 의장석을 점거했던 야당 의원의 멱살을 잡고 하나둘씩 끌어내렸다. 여론조사 결과 국민 70% 이상이 4대강 사업에 반대했지만, 여당은 날치기로 예산을 통과시켰다. 당시 여대야소 정국이었다.
올해 초에도 여당은 무소불위 힘을 휘둘렀다. 여론조사 결과 테러방지법에 반대하는 국민들이 많았지만, 여당이 국회의원 과반수를 차지했다. 이를 저지하려는 야당의원들의 최장 시간 필리버스터에 국민들은 열광했지만 다수당인 여당은 테러방지법을 통과시켰다.
민의의 왜곡... 득표율 37.5%로 국회 다수 의석 차지"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300석 중 152석을 차지했죠. 그런데 득표율은 42.8%였습니다. 국민 절반 이상은 선택하지 않았지만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했습니다. 그 힘으로 테러방지법을 통과시켰죠. 4대강 예산 날치기 때도 한나라당이 과반수이상 의석이었지만, 2008년 총선에서 득표율은 37.5%였습니다. 그런데 153석을 차지했어요. 만약 득표율과 의석수가 어느 정도 일치했다면, 여당은 4대강 사업도, 테러방지법도 밀어붙이지 못했겠죠." 그는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간신히 당선했는데, 전반기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라면서 "선거 제도가 민의를 반영했다면 국회가 박근혜 정권의 독선, 아니 최순실의 전횡, 부패를 막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총선 정의당은 7.2%의 정당 지지를 받았습니다. 득표율로 따지만 의석 24석을 얻어야 합니다. 6석에 그쳤습니다. 선거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소수 목소리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의사가 국정에 반영될 수 없습니다. 행복한 나라들의 공통점은 전국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입니다. 개헌 이전에 민의를 배반하는 선거제도부터 뜯어고쳐야 합니다."그의 말처럼 지역구에서 1등을 해야 당선되는 승자독식 구조의 소선거구제를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꿀 경우, 정부의 독주를 막을 수 있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독선과 전횡의 거수기 역할을 했던 지난 총선의 여대야소 정국은 다음과 같이 정반대로 뒤집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