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에서 만난 오산제자 박정헌 군(오른쪽)과 산타모니카 해변에서(2004. 3.)
박도
어느 어머니어느 하루,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가는데 아이들이 웅성웅성 복도를 메웠다.
"대성이 엄마다."녀석들은 신기한 구경거리나 된 듯 법석을 떨었다. 나는 야단을 쳐서 아이들을 흩어 보내고 어머니를 내 자리로 안내했다. 어머니는 다섯 살가량의 노란 머리 파란 눈의 소녀를 데리고 왔다.
어머니의 외모와 차림은 얼른 보아도 미군 부대 인근에 사는 여인임을 짐작케 했다. 머리는 노랗게 염색했고 얼굴에는 오랜 동안 짙은 화장의 흔적이 역력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어머니는 금세 울먹거렸다.
"학교에서 자기편은 선생님밖에 없대요."어머니는 고개를 숙인 채 한참 동안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교무실의 선생님들의 눈길이 모두 내 자리로 쏠렸다. 호기심에 가득 찬 시선으로.
그해 입학식 날, 직원회를 마치고 운동장에 나가니 많은 신입생들이 반표지 팻말 앞에 정렬하고 있었다. 나는 녀석들이 귀여워 한 녀석씩 살펴 가면서 그들의 복장을 매만져 주고 볼을 쓰다듬어 주면서 뒤까지 훑어갔다.
맨 끝 녀석을 보니 피부가 새하얗고 코가 유난히 오뚝했다. 얼른 보아도 다문화가정의 자녀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녀석을 덥석 껴안았다.
"이름은?""백대성(가명)이요.""누구랑 왔니?""혼자 왔어요."내가 그의 어깨를 다독거리자 그 녀석은 싱긋 웃었다. 그날 학생들을 돌려보낸 후 그들이 제출한 환경 조사서를 정리하면서 대성이의 것을 유심히 살폈다. 본적은 경기도 파주군 용주골이었고, 현주소는 용산구 보광동으로 속칭 텍사스 골목이었다. 그리고 그의 성(姓)은 어머니를 따랐다.
며칠 후 그의 면담 차례였다.
"누구랑 사니?""엄마하고 여동생하고 셋이 살아요.""아버지는?""미국에 계세요.""엄마는 뭘 하시니?""몰라요."녀석의 대답은 갑자기 퉁명해졌다. 나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자 녀석은 금세 싱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