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중 1-12반 담임교사 시절 소풍지에서 제자들과 함께(1972. 5.)
박도
오래 된 제자들이 오히려 기억에 남다
솔직히 세계 어느 나라에서 학생을 밤 10시까지 강제로 남기고 지도 명목으로 돈을 걷게 한다는 말인가. 아마도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서도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학교들은 '돈에 환장한' 학교로 전락해 버렸다. 교권은 돈과 권력에 초연치 못하면 반드시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 단적인 예로 오늘날 '정유라 사태'로 홍역을 치른 한 대학교와 같은 사태다.
교권이 추락하면 결국은 '스승도 없고, 제자도 없는 사회'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나는 평교사로 줄곧 지내다가 교단을 떠나왔지만, 이런 교육 풍토를 만드는데 조연, 때로는 그런 일에 앞장설 수밖에 없었다. 학부모에게 육성회 임원이라는 감투를 씌우고는 육성회비 또는 학교발전기금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돈을 갹출케 했다.
그 보충수업, 자율학습이 학교마다 경쟁적으로 이루어지자 점차 사제의 관계는 멀어지기 마련이었다. 수업에, 자율학습 감독에 지친 교사들은 학생 면담도, 특기 교육이나 특별활동도 기피하거나 위축되기 마련이고, 오직 교과공부에만 매달렸다. 그러다 보니 학교교육은 자동회된 자동차공장의 제품처럼 쏟아져 나오는, 교사는 단순 지식 전달자요, 학생은 전수자의 관계로 끝나기 마련이었다.
나는 지금도 초반기의 제자들은 이름도 거의 외울 뿐 아니라 얼굴 기억도 삼삼하다. 하지만 보충수업, 자율학습이 극성이었던 그 이후는 유감스럽게도 학생의 얼굴도, 이름도 가물가물 기억에 거의 남아있지 않다.
한 번은 이대부고 22기 제자들의 졸업 20주년 모임에 초대받아 참석했다. 그때 사회자가 나에게 한 말씀 부탁하기에 그날 모인 제자들 이름을 한 사람 한 사람 정확히 부르며 학창시절의 추억담을 얘기하자 그들이 밥상을 두드리며 환호했다.
"배아무개, 너. 한밤중에 자지 않고 설악산 2층 숙소에서 몰래 빠져나와 아래층 남학생 숙소로 가려다가 혼났지?""어머, 선생님! 저 학부모예요. 신랑이 알면 큰일 나요.""이아무개, 너. 슬리퍼 신고 설악산 오르다가 혼났지? 그리고, 박아무개, 너. 민속제 때 기모노를 입은 일본 여인이었지.""어찌 그걸 다 기억하십니까?""작가는 과거의 기억을 우려먹고 산단다."어쨌든 서로의 이름을 기억해 주고, 추억을 나눌 수 있는 사제관계라야 졸업 후에도 그 관계도 지속되기 마련이다.
어느 장애 학생내가 오산중학교를 떠나 모교인 중동고교를 거쳐 이대부고에서 근무하던 1980년대 어느 해 여름날 오후, 마침 수업이 비어 쉬고 있는데 구내전화가 왔다.
"선생님, 여기 수위실인데요. 옛날 제자였다면서 성충수(가명)라는 분이 찾아왔습니다." "네?! 기다리라고 하세요. 곧 나가겠습니다." '그 녀석이 어떻게 여기까지?'그는 1972년 오산중학교에서 첫 담임을 맡았던 학생이었다. 키가 가장 작아 출석 번호 1번이었고, 어렸을 때 소아마비를 앓은 탓으로 거동이 몹시 불편했다. 거기다가 열병까지 앓은 탓으로 지능지수가 낮은 학생이었다. 모든 게 뒤떨어지는 녀석이었지만 학교만은 하루도 빠짐없이, 언제나 가장 먼저 등교했다.
수업시간 질문에는 언제나 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시험 답안지에는 자기 이름만 간신히 쓸 뿐, 나머지는 제멋대로였다. 그래서 학급에서 꼴찌는 그가 늘 도맡았다. 짓궂은 반 아이들 등쌀에 무수한 놀림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그들에게 덤빌 줄도 모르고, 언제나 눈물만 훔칠 뿐 담임인 나에게 찾아와 자기가 받은 시달림을 한 번도 호소치 않았다. 소풍 전날 종례 시간이었다.
"성충수!""네, 선생님."학교에서 원거리 소풍 때는 장애 학생이나 신체 허약자는 담임 재량으로 가정학습을 허용케 했다.
"너는 내일 소풍지에 오지 않아도 좋아요. 결석으로 치지 않을 테니.""아니에요, 선생님. 저도 갈 수 있어요."나는 다소 불안했지만 그의 애절한 눈빛에 허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혼자 오지 말고 희규랑 손잡고 와야 돼.""네, 선생님."금방 표정이 밝아졌다. 이튿날 내가 소풍 집결지로 갔을 때 그는 벌써 도착해 있었다. 미처 내가 그를 확인치 않자 열 가운데서 절름거리며 다가와서 도착 인사를 했다.
"선생님, 저 왔어요.""그래, 고생 많았지?""아니에요, 선생님 말씀대로 희규 손을 잡고 왔어요."내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활짝 웃으며 그제야 아이들 틈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