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심각한 하야 요구촛불의 형상화
이희동
맹랑한 글귀에 헛웃음부터 나왔다. 이 아이가 도대체 얼마나 알고 이런 말들을 구사하고 있는 걸까? 녀석에게 이 사태는 나중에 어떻게 기억될까?
"이런 말은 어찌 알아? 엄마, 아빠가 이야기 했던가?""아니. 말 안 해도 알지. 뉴스도 계속 보고 있는데."옆에서 막내 복댕이가 끼어든다.
"박근혜 대통령이 내려와야 해.""응? 넌 대통령이 왜 내려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대통령이 예뻐지는 주사 맞는다고 누나, 형들 죽어가는 거 안 보살폈잖아."이런. 네 살짜리 꼬마한테도 신뢰를 잃어버린 대통령이라니. 네 나이면 꿈이 대통령이라고 해도 조숙한 느낌이건만, 넌 벌써부터 대통령이 내려와야 하는 현실부터 배우고 있구나. 그래도 어쩌랴. 이게 현실인 것을. 오늘 아빠는 그런 너희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보여줄 거다.
집을 나와 버스를 타고 전철역까지 갔다. 예전 같았으면 교보문고 등지에 차를 주차시켜 놓고 촛불집회에 참여하곤 했으나 이번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도 봐야 되니 집회에 참여했다가 아이들 졸릴 시간에 맞춰 전철을 타고 일찍 돌아오는 수밖에.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아이들은 오랜만에 엄마, 아빠와 전철을 탄다며 신 나했지만, 밤늦게 녹초가 되어서 돌아올 아이들 생각을 하니 부모로서 걱정부터 앞서는 것이 사실이었다. 과연 이게 잘 하는 일일까?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광화문 광장에 가서 나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건 당연한 일이었지만, 가뜩이나 요즘 얕은 감기에 몸 상태도 좋지 않은 아이들을 데리고 굳이 광화문으로 향하는 건 내 욕심 아닐까?
그때였다. 전철 안에서 까꿍이가 반가운 목소리로 누군가를 불렀다. 녀석의 같은 반 친구였다. 그 아이도 엄마, 아빠, 유모차의 갓난아기 동생과 함께 외출을 하고 있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역시 광화문이었다. 까꿍이는 자신의 친구가 자기와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에 매우 고무된 듯 전철 안에서 연신 까르르거리며 즐거워했지만, 정작 그 모습에 위안을 받는 것은 내 자신이었다. 그래,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그러고 보니 주위에도 광화문 행 사람들이 군데군데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