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저자 펑지차이는 1986년 말부터 문혁 피해자 1백 명의 이야기를 여러 잡지에 연재했다. 여기서 29편을 묶어 1996년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한국판은 그 중 17편을 엮었다.
후마니타스
<백 사람의 십 년>은 그 시기를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 유명한 사람, 권력자의 이야기는 없다. 철저히 서민의 이야기만 있을 뿐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큰 인물이 아무리 비극적인 일을 겪었다 해도 일반 사람이 겪는 비극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엔 억울한 사람이 많다. 마오쩌둥은 부르주아 반동사상을 철저히 비판해야 한다는 말로 문혁을 시작했지만, 피해자 다수는 자본주의를 추구하긴커녕 국가를 따르고 당에 충성하던 사람이었다.
문혁을 일으킨 마오쩌둥을 존경한 사람도 있었다. 마오쩌둥의 딸 리민과 동기였던 한 피해자는 '리민과 함께 마오 주석에게 보낼 선물과 편지를 정성스레 준비하던' 사람이었다. 숭배자를 짓밟는 혁명이라니,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저자는 문혁 시기, 반혁명 분자와 우파 분자는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이유는 다양했다. 마음에 안 들던 사람을 매장하기 위해서, 권력 다툼에서 이기기 위해서.
피해자는 문혁이 끝난 후에야 자신이 왜 억울한 일을 당했는지 알 수 있었다. 희생양이 필요한 경우도 있었다. 선천적으로 웃을 수 없는 사람이 반혁명 분자라 몰린 이야기가 그 예다.
책에 따르면, 당국은 그의 예전 우경 발언을 근거로, 그가 웃지 못하는 이유가 새로운 중국에 대한 원한 때문이라고 규정했다. 조사반은 물적 근거를 만들기 위해 마오 주석 초상화를 보고 웃으라 했고, 웃지 못한 그는 반혁명 현행범으로 몰렸다.
그렇게 반혁명 분자로 몰리면 사회적으로 매장 당했다. 산간벽촌에선 비판투쟁대회를 열 때 수십 킬로그램의 똥통을 피해자 목에 걸게 했다. 사람들은 차례로 똥을 집어 던지며 피해자를 손가락질 했다. 이들 중 일부는 수모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기도 했다고 저자는 기록했다.
"우리가 겪었던 고통이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저자가 문혁 피해자 경험담을 모을 때 한이 맺혀 그를 찾아 온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한 50대 여성은 인터뷰 뒤 혈압이 높아져 한 달을 누워 지내야 했다고. '사건을 다시 떠올리는 자체가 허물을 벗겨내듯 고통스러운' 일인 피해자를 인터뷰할 때마다 저자는 매번 이렇게 말했단다.
"이 책은 나를 위한 것도 아니고 피해자만을 위한 것도 아니다. 이 모든 이야기를 후대에 알려야 한다. 우리가 겪었던 고통을 다음 세대가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여전히 중국 정부는 자신의 죄를 덮으려 한다. 문혁을 쉬쉬 한다. 민주화 시위를 탱크로 무력 진압했던 천안문 사건(1989)은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에서는 여전히 검색 금지어다. 천안문 사건 당시, 무력진압을 승인한 덩샤오핑은 문혁 시기 박해받았던 유력 정치인이었다. 문혁 당시 그의 장남은 홍위병을 피하다 하반신 불구가 됐다. 그런 그가 문혁 13년 뒤 국가폭력을 승인한 건 아이러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