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빗이끼벌레 '투명한 몸통, 고사리 무늬'2015년 6월 24일 오전 충남 공주시 공주보 상류 1키로미터 지점에서 확인한 큰빗이끼벌레. 큰빗이끼벌레는 다양한 크기로 군집해 번식하고 있다.
이희훈
2014년 6월 17일, 금강과 이별하려고 혼자 걸은 지 4일째 되던 날이다. 걷고 또, 걸었다. 아니, 걷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걸었다. 배가 고프면, 배낭서 빵을 꺼내 먹었다. 그래도 배가 고프면, 생수를 들이켰다. 잠은 텐트도 치지 않고 강변에 그냥 널브러져 잤다. 선물 받은 대형 스카프를 이불 삼아 풍찬노숙했다.
이날 강변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리고 있을 때다. 강물 속에 이상한 물체가 보였다. 옷을 입은 채로 물속에 들어가 살펴보니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그냥 강바닥을 점령하고 있었다. 그 괴생명체를 손으로 들어 올렸다. 시궁창 냄새가 진동했다. 힘껏 잡으면 흐물거리며 흘러내렸다. 처음 보는 생명체, 흉측했다.
"이게 대체 뭘까?"다시 기자 본능이 꿈틀거렸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알 만한 사람들에게 보냈다. 전문가와 학자, 환경단체 관계자들이다. 돌아온 대답은 한결같았다.
"처음 봤다." "모르겠다."괴생명체 몇 무더기를 강변에 올려놓고 마주 앉아서 고민에 빠졌다. 새로운 생명체가 나타난 것이어서 기사를 쓰긴 써야 할 텐데, 뭐라고 써야 할지...
가장 궁금했던 건 이 생명체가 인간에게 이로운지, 해로운지를 아는 일이었다. 물컹물컹한 괴생명체를 팔에 문질렀다.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반으로 갈라봤다. 지독한 냄새가 났다. 이 정도로는 기사를 쓸 수 없었다. '괴물이 나타났다'고 할 수도 없었다. 3~4시간을 고민한 끝에 그는 직접 실험해보기로 결심했다. 몸통의 일부를 떼어내 삼켰다. 그 뒤에 온몸에 두드러기가 났고 두통이 밀려왔다. 눈으로 보고 확인한 것만 쓰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는 그는 그 뒤에야 기사를 쓸 수 있었다.
금강에 창궐한 흉측한 벌레...어떻게 해야 하나4대강 사업의 재앙?...흉측한 벌레 들끓는 금강나는 큰빗이끼벌레를 먹었다전국이 들썩였다. 4대강 사업이 다시 사람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큰빗이끼벌레는 강에 콘크리트 보를 세우고 물길을 막아 유속이 느려지면서 나타난 생명체였다. 4대강 사업으로 강이 죽어가고 있다는 징조였다. 기사가 나가고 온라인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큰빗이끼벌레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지상파 방송, 신문, 환경단체 등에서의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시도 때도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 뒤 기자질을 그만두겠다는 다짐은 까마득하게 잊었다. 생활고는 나아지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금강을 기록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더 컸다. 드라마로 치면, 시즌2가 시작됐다. 시즌1이 '4대강 사업의 역효과'였다면, 시즌2는 참혹한 '죽음의 강'이었다. 4대강 사업의 후폭풍이 본격화됐다. 다시 카메라를 고쳐 메고 취재수첩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금강을 혼자 걷고 있는 데 제보전화 한 통이 날아들었다.
"서울에서 OO일보 기자들이 왔는데, 큰빗이끼벌레를 취재한대요."이름만 대면, 다 아는 유력 일간지 기자들이 큰빗이끼벌레를 취재하러 왔다는 거였다. 4대강 사업을 앞장서서 홍보했던 언론사의 기자들이었다. 4대강 사업 이후 녹조가 창궐하고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해도 강을 찾지 않던 언론사 기자들이 대체 왜? 그 배경이 수상했다. 제보자의 이어진 말에서 해답을 찾았다.
"두 명의 기자가 먹었는데, 큰빗이끼벌레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것을 증명하러 왔대요."4대강이 썩어가는 것을 증명하지 않고 김 기자의 기사를 반박하기 위한 취재였다. 국민의 알권리가 아니라 정권의 안위를 위한 취재였다. 당장이라도 뛰어가서 항의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런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열을 올릴 시간이 없었다. 죽어가는 강을 돌아보고는 게 우선이었다.
며칠 뒤, 큰빗이끼벌레를 삼키면서 취재했다는 언론사에 기사가 떴다. 신문지 한 면을 털어서 쓴 기획기사였다. 그런데 어디에도 기자가 큰빗이끼벌레를 먹어서 생체 실험을 했다는 내용은 없었다. 대신 전문가들의 입을 빌려 인체와 수질에 무해하다고만 적었다. 현장을 취재하고도 책상머리에서 그동안 썼던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기사였다.
4대강을 지키는 1인 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