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정부의 소통령'으로 불리던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가 지난 1997년 5월 17일 대검찰청 현관에서 침통한 표정으로 승용차에 탑승, 수감장소인 서울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씨는 문민정부 출범 후에도 '중앙여론조사연구소 소장'이라는 직함으로 활동했다. 별다른 공식 직함이 없는 김씨는 '여의도 김소장'으로 통했다. '여의도 김소장'은 '소통령'의 다른 이름이었다. 아버지가 청와대에서 칼국수를 먹으며 사정을 지휘할 때, 아들은 기업으로부터 '활동비'를 받아 강남의 고급 룸살롱 '지안'에서 측근들과 어울리며 국정을 농단했다. 시간이 갈수록 김씨와 선을 대려는 정치꾼들이 불나방처럼 모여들고, 그의 책상에는 이력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갔다.
김씨도 시중의 여론을 정확히 파악해 아버지에게 가감없이 전달함으로써 국정을 보좌하겠다는, "좀 더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여론조사를 시작했다. 김씨는 '한보사태'로 구속되기 전까지 4년간 기업들로부터 '활동비'를 걷어 여론조사비로 50억 원 이상을 썼다. 여론조사비만 월 평균 1억 원 이상이었다. 김씨도 처음에는 "좀 더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안기부의 '대통령 일일보고'를 오정소 대공정책실장과 김기섭 기조실장 라인을 통해 대통령보다 먼저 봤다.
정권 말기 현철씨 이름이 각종 비리사건에 오르내리더니 1997년 한보그룹이 부도나면서 '한보 게이트'가 불거졌다. 언론은 "현철씨의 비리혐의는 단순한 인척정치 해악의 수준을 넘어 총체적 조직적 국정문란 사태로까지 확산되고 있다"라고 질타했다. 김씨는 뇌물수수 및 권력남용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아들의 전횡을 막지 못한 대통령은 참담한 표정으로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다. 결국 김 대통령은 사조직의 국정농단 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다가 IMF 환란을 맞이했다.
국정농단, 20년 만에 대한민국을 흔들다대통령 사조직의 국정농단이 20년 만에 다시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다. 아무런 공직을 맡은 바 없는 최순실씨가 대통령의 연설문과 국무회의 말씀자료 등을 미리 받아본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JTBC에 따르면, 최씨의 태블릿PC에는 대통령 연설문 및 말씀자료가 44개 있었다. 최씨는 일본 특사단 면담 시나리오 같은 민감한 외교 문건도 접견 9시간 전에 받아본 것으로 드러났다.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다던 해괴한 일이 21세기 청와대에서 벌어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5일 취임 이후 처음으로 최씨와의 관계를 인정하고, 연설-홍보-메시지 등 국정운영의 상당 부분을 사조직에 의존해 왔음을 '자백'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사과 태도와 수위를 보면 부인할 수 없는 증거 앞에서 마지못해 한 '어물쩍 사과'라는 느낌이 역력하다. 그래서 "좀 더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한 일이라는 대통령의 해명에서 '불순한 마음'을 읽은 국민의 분노는 탄핵과 하야를 요구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청와대에서 생산된 문서는 밖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엄격히 관리된다. 청와대 직원들은 컴퓨터에서 개인 전자우편을 사용할 수 없게 돼 있다. 사무실에서 작업한 문서를 이동식저장장치(USB)에 저장하는 것도 안 된다. 업무상 청와대 공식 전자우편 계정을 통해 외부인에게 이메일을 보낼 경우에는 청와대 전산팀 사이버 보안 관련 부서에 소명해 전송 내역을 확인토록 돼 있다.
대통령령인 보안업무규정과 대통령훈령인 보안업무규정시행규칙에 따르면, 국정원장은 국가보안시설에 대해 정기적으로 보안측정과 보안감사 그리고 보안사고 조사를 하게 돼 있다. 그런데 '빨간펜'으로 수정한 흔적이 있는 드레스덴 연설은 남북관계의 로드맵을 담은 비밀 문건이다. 발표 전까지 극비로 다뤄져야 할 극비사안이 한 민간인의 빨간펜으로 수정됐다는 건 국가보안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음을 의미한다.
국가보안 시스템에 구멍 뚫은 장본인... '박근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