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랑리부대 근무시절 막사 앞에서 소대원과 함께(1970. 12. 뒷열 오른쪽 네번째 기자).
박도
대대장 당번병에서 밀려난 병사그런데 대대장 운전병은 이내 체념을 하고 소대생활에 순종하는데, 대대장 당번병이었던 김 병장은 내 눈치를 힐끔힐끔 보면서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트렸다. 그는 그동안 무서운 대대장 밑에서 호가호위하며 지내다가 산중 땅굴 막사에서 잠복근무를 하자니 기가 막혔던 모양이었다. 그는 밤샘 잠복근무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은 듯, 내게 아프다고 말한 뒤 내무반 한쪽 구석에서 누워 지냈다.
아침 점호 때도 그는 마지못해 나온 뒤 또 아픈 척했다. 나는 엄살 부리지 말라고, 여기가 너희 집인 줄 아느냐고, 혼내 주려다가 꾹 참았다. 아예 다음 날부터는 내가 먼저 열외를 시켜줬다. 일주일 후 그는 내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빌었다.
"소대장님! 그동안 제가 잘못했습니다.""뭘?""사실은 제가 꾀병을 부렸는데도 소대장님은 저를 꾸짖지 않기에…. 저 이제 근무 조에 넣어주십시오. 내무반에서 계속 지내니까 소대원들에게 미안해서 더 이상 누워 지낼 수가 없습니다.""알았다. 내일부터 근무 조에 편성하겠다."그는 그날 이후 다른 어느 소대원 못지 않게 근무도 성실히 서고, 매사에 적극적으로 변했다. 그는 대대장 당번병 시절 자기가 대대장인 양 부대 내에서 안하무인격으로 지냈다. 대대장이 전출을 가자 그는 대대장 당번병에서 밀려났다. 그러자 쥐꼬리만 한 권력에서 밀려난 박탈감에 한동안 누구에겐가 반항하고 싶었다. 그래서 몸살을 핑계로 태업했는데도 내가 받아주지 않자(자기 말로는 나에게 덤비고 싶었는데) 마침내 자기가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고 솔직히 말했다.
그뿐 아니라, 연대 인사과에서 밀려나온 소대원들도 대동소이했다. 그들 가운데는 부모가 야권 성향인 이들도 있었는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벽지 CAP소대로 밀려났다는 말도 돌았다. 그들도 한동안 나에게 무척 경계하는 태도를 보였으나 곧 오해가 풀린 듯, 서로 마음을 터놓고 헤어질 때까지 편히 지냈다.
멍석을 업어오다나는 그들에게 선언했다. 우리 소대의 근무 여건은 최악이지만, 대한민국 군대에서 가장 민주적이며 편하고 깨끗한 내무생활이 되도록 개선해주겠다고. 그들에게 그리고 나 스스로 다짐했다. 그래서 소대 기재계에게 허용되는 대로 1주일에 한두 번씩 쌀로만 밥을 짓게 하거나 누룩을 구해다가 소대원들이 자체적으로 술을 담가먹게도 했다.
내가 멍석을 짜라고 지시한 지 일주일쯤 지난 뒤 소대원 막사인 내무반으로 가자 멍석이 깔려 있었다. 그동안 소대원들이 멍석을 짠다고 법석을 떨지 않았는데도 그새 멍석이 깔려 있기에 내무반장에게 그 연유를 물었다.
"소대장님은 그냥 모른 체 하세요."그러면서 내무반장은 멍석을 내무반 바닥에 깔게 된 이야기를 했다. 내 지시를 받은 다음 날 아침 소대원 셋이 마을로 짚을 얻으러 갔지만 미처 열 단도 구하지 못했단다. 이미 추수가 끝난 지 오래된 데다가, 남은 짚은 소먹이용이라고 짚을 더 주지 않더라고 했다. 마침 돌아오려는데 어느 한 집 뒤꼍에 멍석이 네 개나 가로로 묶여 있기에, 그날 밤 그 가운데 하나를 업어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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