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딴 송이버섯 두 개
이준수
"쌤 잠시만 저 따라오세요. 뭐 할 말이 있어요."
역시 뭔가 있다. 여학생과 달리 남자애들은 어지간해서 미주알고주알 일대일 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 C군은 나를 체포하듯이 양 손목을 꽉 잡고 화장실로 데려갔다.
'설마 학교 폭력인가? 죽고 싶다는 말을 하는 건 아니겠지? 부모님께서 싸우셨나?'
20미터 남짓되는 마루 복도를 지나며 온갖 불안이 스쳤다. 안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는 나와 C군은 기다란 남자 소변기 앞에 섰다. 어색한 순간이 흐른다. 촤아아~ 소변기에 설치된 센서가 사람을 인식하고 물을 내렸다.
"저 이거 받으세요."
"이게 뭐냐?"
"아빠가 새벽에 산에 가서 딴 송이버섯이에요. 선생님 드리래요."
투명 비닐봉지에 송이버섯 두 개가 담겨있었다. 아이는 봉지를 살짝 열어보였다. 그윽하고 맑은 향이 코 안에 가득 찼다. 신선하고 잘생긴 버섯이었다. 이걸 보여주려고 4학년 꼬마는 그렇게 은밀하고 엄숙하게 움직였단 말인가?
"
정말 향기롭다. 과연 소고기보다 귀하다는 송이구나. 그런데 선생님은 교사를 오래 하고 싶은데?"
"네? 아빠가 그냥 드시래요."
"아버님께 진짜 진짜 감사하다고 전해드려 줘. 선생님은 마음만 받을게."
C군 손을 꼭 잡아줬다. 우리는 기념사진이나 찍자고 하고 웃으며 나왔다. 교직 생활 7년 만에 새벽이슬 맞은 송이를 보여준 학생은 처음이었다. 강원도에서 아이들 가르치면서 촌지와 뇌물이 뭔지 모르고 살았다. 기껏해야 상담 때 어머님들이 손에 들고 오는 '박카스', '비타500'이 전부였다. 음료수 정도는 그냥 받고, 애들 보상 간식으로 사놓은 초코파이나 쿠키를 조금 내어드리곤 했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는 첫날 가장 귀한 뇌물(?)을 받을 뻔했다. 송이버섯을 어제 받았다면 나는 고민했을 것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향이라도 맡았으니 잠시 호사를 누렸다. 이제 교사는 껌 하나, 커피 한 잔 받으면 안 된다. 너무 매몰차다 할 수 있으나 이 또한 시대적 요구이지 않겠는가?
오늘은 상담주간 셋째 날이다. 네 분의 학부형이 방문 상담을 예약했다. 학급 알림 어플리케이션으로 꼭 빈손으로 오시라 부탁드렸지만 또 뭘 들고 오실지 모른다. 그때마다 기분 나쁘지 않도록 최대한 고마움과 거절과 양해의 말씀을 드려야 한다. 나는 이제 평생 이 일에 익숙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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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미래의창 2024>, <선생님의 보글보글, 산지니 2021> 을 썼습니다.
'좋은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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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첫날, 학생이 송이버섯을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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