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가 다 끝난 후 발의 상처로 늘 여러사람에게 도움을 받았다.
정효정
알고 봤더니 프랑스 민간요법에서 치료제로 쓰이는 점토(clay) 종류라고 했다. 점토라니... 문화충격이다. 미국인인 릴리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런 걸 발랐다가 세균이 들어가면 더 심각해진다며 걱정이다. 하지만 게이탄과 다비드의 표정은 진지했다. 상처에 진흙을 바르자 저릿저릿 아프며 열이 나기 시작했다. 다비드는 자신의 붕대로 내 발을 둘둘 감았다.
한바탕 소동이 끝난 후 침대로 돌아가자 이번엔 옆자리의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미국에서 온 롭이라고 했다.
"물집이 심한 모양이지?"두말 않고 발을 보여줬다. 붕대와 반창고로 엉망이었다. 그러자 그는 주섬주섬 자기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돌돌 말은 까만 양말이었다.
"이거 너 신어. 나 여러 개 가지고 있거든."일단 받긴 받았는데 무척 당황스럽다. 통성명을 겨우 마친 사람에게서 신던 양말을 선물 받다니. 양말을 펴보니 심지어 발가락이 달려있는 무좀양말이었다.
"그걸 신으면 물집이 안생길거야." 잠시 머리가 복잡해졌다. 모르는 사람에게 신던 양말, 그것도 무좀양말을 선물로 받다니. 산티아고 길에서 남자를 찾는다더니, 남자찾기는 고사하고 외간남자가 신던 무좀양말이나 신게 됐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나는 떨떠름하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의 양말을 받았다.
며칠 후, 나는 길을 걸으며 이 미국 아저씨를 수소문 했다. 제대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게이탄이 발라주었던 진흙은 내 물집을 어느 정도 아물게 해주었고, 그가 준 무좀양말을 신고 부터는 더 이상 새로운 물집이 안 생겼다. 하지만 길 위의 어느 누구도 그를 봤다는 사람이 없었다.
대체 어디로 간 거지... 더 이상 찾기를 포기하고 그를 천사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무지몽매한 나를 깨우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 온 무좀양말을 수호하는 천사... 그날 이후 두 번 다시 누군가의 무좀양말을 비웃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무좀양말은 사랑이었다.
여행이 끝난 후의 일이다. 남아공의 아이린이 내게 메일을 보내왔다.
"넌 네 여행길에 만난 천사들을 기억하고 있니?"그녀가 보내준 사진에는 그날 무릎을 꿇고 내 발에 붕대를 감아주는 다비드의 모습이 찍혀있었다. 그 진지한 표정에 웃음이 나왔다. 그는 붕대의 수호천사였던 것일까. 다양한 천사들과 함께 걸었던 산티아고 순례길, 이제 목적지까지는 485km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