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관 바닥에 누운 순례자들숙소가 다 찼을 때는 체육관에서 묵을 수 있게 해준다
정효정
아무도 그의 매트리스에 손대지 않았다. 그리고 애초에 그의 매트리스도 아니다. 이 체육관에 비치되어 있는 매트리스였다. 그러니 설사 누가 가져갔다고 해도 다른 매트리스를 깔면 될 일이었다. 체육관 바닥에 널린 게 이 스티로폼 요가 매트리스다. 그때까지도 나는 질려서 한 마디 말도 못하고 있었다. 릴리는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것 봐, 내가 쟤 이상하다고 했잖아." 참담한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헝가리에서 온 순례자 이안. 그는 확실히 좀 이상했다. 기분이 아주 좋아 보일 때도 있지만, 아주 나빠 보이기도 했고, 가끔 이쪽을 보며 히죽히죽 웃고 있거나, 눈이 빨개져서 성당에서 혼자 울고 있을 때도 있었다. 나는 그냥 '감정기복이 심한 타입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본격적으로 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건 미국과 캐나다에서 온 순례자들에게서였다.
"그 사람 이상하지 않아? 그 헝가리에서 왔다는 사람.""그러게. 그 사람 좀 정서적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알콜중독같기도 하고. 가끔 쳐다보는데 좀 소름끼쳐." "원래 동유럽계들이 좀 성격이 강하지 않어? 아, 지금 이 방에 동유럽계 없지? " "그치, 동유럽 사람들이 캐릭터가 세긴 하지." 그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사실 북미출신 여행자들이 자주 다른 민족에 대해 뒷담화를 하는 게 마음에 안 들기도 했다. '저 호들갑스러운 북미인들이 또 엄한 사람 잡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낙관적인 판단과는 다르게 일은 터져버렸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