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로 다가오지 않는 포카라의 외국인 거리
송성영
좀 더 값싼 숙소를 찾아볼까 하다가 그냥 여장을 풀었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절룩거리며 여기 저기 싸돌아다닐 기운이 없었다. 포카라에서 하루만 신세지면 된다는 심정으로 여장을 풀고 고양이 세수로 지내온 꼬질꼬질한 몸과 옷을 빨았다. 땀에 절어 있는 몸에서는 손끝만 데도 때가 밀려나왔다. 옷에서는 검은 때 구정물이 줄줄 나온다.
두 벌이 전부인 옷을 개운하게 갈아입고 다시 한국인 식당을 찾아갔다. 네팔 아줌마 혼자서 식당 입구의 작은 텃밭에서 풀을 뽑고 있다. 일단 카트만두로 가는 버스표를 구하고 '비욘드 네팔'에 전화 통화를 하고 싶었다. 전화 한 통 때문에 네팔의 심카드를 갈아 끼울 수 없어 한국인 식당에서 돈을 내고 통화를 하기로 했는데 한국인 주인은 둘 다 출타 중이라고 한다.
다시 숙소에 들어와 잠깐 눈을 붙이고 나서 늦은 저녁 무렵에 다시 한국인 식당을 찾아갔다. 식당 주인이 두 명의 한국인 관광객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별로 반갑지 않은 모양이다. 포카라에 널리고 널린 사람들이 한국인이라는 듯 소 닭 보듯 건성으로 인사를 받는다. 식당 주인이 자리를 내주며 앉으라 했지만 나는 그냥 멀뚱히 서서 계면쩍게 입을 열었다.
"박타푸르, 아니, 거시기... 카트만두 가는 버스표를 구하려 합니다.""내일 아침에 떠나신다고 했죠? 너무 늦게 오셨네요.""아까 왔다갔는데 두 분이 자리에 없어서...""어쩌죠? 오늘은 버스표를 구할 수 없네요." 이미 매표 업무가 끝난 상태라고 한다. 나는 적당히 할 말이 없어 별 뜻 없이 식당 주인에게 때 빼고 일주일째 입고 있던 옷을 빨았더니 아주 개운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색을 하며 포카라는 지금 물 부족 사태를 겪고 있어 숙소에서 빨래를 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럼 어디서 빨래를 해야 한단 말인가. 대꾸를 하려다가 부질없는 신경전을 벌이는 것이 마뜩찮아 가볍게 한마디 건넸다.
"안나푸르나 쪽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비가 내리던데... 물 부족 사태를 몰랐던 것이 다행이네요. 알았으면 엄청 미안했을 텐데...""모르는 게 죄죠.""예!?."한국인 식당 주인의 시비조의 말투에는 '이 딱한 인간아, 모르는 게 뭐가 그리 자랑할 만한 일이라고 그따위 변명을 늘어놓나. 지금 물 부족으로 네팔 사람들이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줄이나 알어?'라는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내가 당황스러워하자 옆에 앉아 있던 식당 여주인이 동거남의 도발적인 말투가 무안했는지 중간에 끼어들었다.
"물이 부족한지 모르셨으니까 그러셨겠죠.""내가 빨래를 한 지 오래돼서요...""먹는 물도 부족한데 빨래를 하는 건 자제해야 합니다."남자 주인이 더 이상 변명 따위를 듣고 싶지 않다는 투로 내 말꼬리를 싹둑 잘라 말했다. 언어가 통한다는 것이 이토록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줄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나, 싶어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먹는 물조차 부족한 사태에서 물을 함부로 쓰면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억울했다. 나만큼 물을 적게 쓰는 사람도 드물 것이었다. 아마 나는 나를 몰아붙이고 있는 식당 주인보다 물을 수십배 정도 덜 쓸 것이었다. 한국에서도 그래왔듯이 인도와 네팔을 여행하면서 한 달에 두 번 정도, 빨래와 샤워를 하던 나였다. 그는 내게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성인들의 말씀을 일깨워 주고 있었다.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술을 마시던 고급스러운 등산복 차림의 한국인 남자 둘이 나를 곁눈질로 쳐다봤다. 그들의 표정은 돈도 없는 놈이 네팔까지 와서 구질구질하게 거지꼴로 싸돌아다니며 한국인 망신주지 말라는 표정이다.
웃음기 없는 이들과 더 이상 마주하고 싶지 않아 도망치듯 식당을 빠져 나왔다. 식당을 빠져 나오면서 '그만 가보겠다, 맛있게 드시고 가라'는 나의 인사말에 그들은 가거나 말거나, 곁눈질로 인사를 받았다. 거의 2개월 만에 만난 한국인들의 인상이 그랬다. 그들 앞에서 나는 '촌놈'이었다. 어쩌다 서울에 가게 되면 전철 방향을 거꾸로 타곤 했던 나는 포카라 외국인 거리에서도 어리버리한 '촌놈'이었다.
나를 달가워하지 않는 저들, 식당에서 만났던 한국인들의 모습이 내 자신과 겹쳤다. 까칠한 저들의 표정은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알게 모르게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고 함부로 대했을 또 다른 내 모습이기도 했다.
더는 이곳에 있을 수 없다... 무작정 택시를 잡아탔다숙소로 들어와 침대에 누워 텔레비전 채널을 돌렸다. 네팔 텔레비전 방송을 처음 본다. 인도와 채널이 크게 다르지 않은 위성 방송이다. 바퀴벌레 몇 마리가 침대 머리맡에서 얼쩡거린다. 네팔 시골에서 본 바퀴 벌레보다 서너 배는 더 커 보인다. 잘 먹고 잘사는 도시의 부유한 사람들처럼 이곳 바퀴벌레 또한 살이 통통하게 올라있다. 이곳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고 싶어진다.
카트만두로 향하는 버스 터미널로 가기 위해 무작정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 기사에게 '이곳, 외국인 거리는 네팔이 아니다.'라고 말했더니 그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포카라의 외국인 거리는 관광차원에서 먹고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천국이지만 가난한 여행자들에게는 숨 막히는 곳이다.
그렇다고 가장 싼 숙소와 가장 싼 음식점을 찾아다니는 가난한 배낭 여행길은 고행길이 아니다. 가난한 네팔 서민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여행하다보면 네팔을 좀 더 깊이 만나게 된다.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즐거움을 만나게 된다.
외국인 한 명 보이지 않는 낯선 소도시에서 지칠대로 지쳐있던 내게 물 한 잔을 권했던 네팔 여인, 버스 안에서 만나 자신의 고향집까지 친절하게 안내했던 네팔 경찰 아르준, 아들이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게 그 귀한 석청을 내주었던 란드룩 마을의 아버지, 그 지옥 같은 지프차 짐칸에서 생면부지의 나를 20대 청춘으로 되돌려 놓았던 유쾌 발랄한 네팔 예비 여선생들이 그랬듯이 돈과 상관없는 네팔의 진면목, 네팔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우러나오는 친절한 미소와 순박한 심성을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