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제승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이 13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브리핑실에서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경북 성주 배치 선정 배경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드 논란과 더민주의 입장에 대한 비판이 커지면서 7월 12일에는 '사드 관련 의원간담회'가 있었다. "많은 분들은 당론으로 반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는 뉴스도 접했다. 하지만 "(사드 반대 당론 결정에) 전술적으로 전략적으로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신 분들도 있었다"고 한다. 대변인 브리핑에 따르면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신중론은) 미국과의 관계, 향후 수권세력으로서 국가경영 문제, 집권이후의 문제 등을 염두하여 전술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사드 배치 결정과정에서 나타난 밀실성, 졸속성, 국민동의 부재, 주변 강국과의 관계 등에 대한 보완책을 끊임없이 요구하며 국민들의 입장에서 활동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 의견에 따르면 현 시점에서 사드에 대한 입장을 당론으로 정하는 것이 전략적으로도 정무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대변인 브리핑-
그러면서 당내 사드 관련 기구 필요성 검토, 국회차원의 심도 깊은 논의를 위한 별도의 절차 등을 고민해 "빠른 시간 내에 국민 여러분께 보고 드리겠다"고 했다. 아래에선 주로 더민주 내 사드 찬성 내지 신중론의 근거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대안적 접근을 다뤄보기로 한다.
첫째, '사드 대란'은 일시적으로 지나갈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언론에선 '후폭풍'이라는 표현을 즐겨 쓰지만, 내가 보기엔 '빙하기'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사드 결정이 철회되지 않으면, 그래서 기어코 이 땅에 사드가 들어오면 '해빙기'도 불가능하다. 우선 평택미군기지 확장, 강정마을 해군기지 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드 부지 주민과 중앙 정부 사이의 극심한 갈등이 지속될 것이다. 또한 사드 발표와 내년 하반기로 예정된 실제 배치까지의 1년여의 시간 동안, 중국과 러시아는 한미 양국의 결정을 번복시키기 위해 다양하고도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할 것이다.
그런데 이때만 참는다고 곧 지나갈 문제도 아니다. 기어코 사드가 한국에 배치되면 중국과 러시아는 외교적·경제적 압박에 더해 군사적·전략적 대응에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사드 부대를 겨냥한 미사일 부대 배치, 중-러 간의 전략 무기 협력 본격화, 동아시아 세력 균형 유지 차원에서 북한 핵 보유 사실상 묵인 및 북-중-러 군사 협력 관계 복원 등이 이에 해당된다. 한국 내 사드 배치는 우리를 '지정학적 감옥'으로 인도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주장해온 까닭이기도 하다.
위기의 장기화, 고착화는 사드의 무서운 '증식' 능력에서도 비롯된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세이의 법칙'처럼 사드를 비롯한 MD는 끊임없이 수요를 창출하고 그래서 강화·확대된다. 가령 이번에 배치키로 한 사드 포대가 수도권을 방어 대상에 포함시키지 못하면서, 한미 군 당국과 일부 언론은 제2의 사드 포대 도입이나 패트리엇의 증강, 심지어는 이지스함에 장착하는 SM-3 미사일의 도입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펜타곤과 록히드마틴은 기존 사드보다 빠르고 멀리 날아가는 '확장형 사드(THAAD-ER)' 개발에도 착수한 상황이다.
또 최근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SLBM) 시험 발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북한은 사드를 비롯한 MD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투발 수단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아울러 사드가 배치되면 전략적 균형이 무너질 것이라고 간주하는 중국과 러시아도 한국에 대한 군사적 대응책을 강구할 것이다. 이는 곧 MD 확대·강화의 군사적 빌미가 되고 만다. 한마디로 한국은 'MD의 늪'으로 계속 빠져들 공산이 크다.
둘째, 더민주는 '전략적 모호성'을 지키고 싶겠지만, 이미 그 단계는 지났다는 것도 깨달아야 한다. 명확한 입장을 정하지 못하면,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어정쩡한 입장은 보수 언론에겐 '좋은 먹잇감'이 되고 상당수 지지자들에겐 '실망의 근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선이 다가올수록, 그리고 사드 배치가 임박해질수록, 그리고 더민주의 우왕좌왕이 지속될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 심해질 것이다. 특히 대선이 다가올수록 정부 여당과 보수언론의 더민주에 대한 공세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야권 연대를 요격하는 정치적 무기로도 활용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반면교사로 삼길 바란다.
셋째, 사드 문제 해결 없는 '경제민주화'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제와 안보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지정학적 위기와 지경학적 기회가 공존하는 한국의 입장에선 더욱 그렇다. 또한 '경제는 진보로, 안보는 보수로'라는 식으로 퉁치고 넘어갈 문제도 아니다. 이건 '이념'의 문제라기보다는 경제와 안보를 통합해 민생과 안보를 증진시킬 수 있는 국가전략을 만들어내고 실행할 수 있느냐는 '실력'의 문제이다. 더민주는 사드 발표로 경제적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는 현실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넷째, 사드 배치 발표를 재검토하거나 철회하면 한미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더민주 일각과 일부 국민들 사이에게 제기되고 있다. '중국 보복론'처럼 미국으로부터 보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말이다. 하지만 이건 크게 걱정할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중국의 사드 반대 입장과 미국의 사드 추진 입장의 경중의 차이가 크다. 중국은 시진핑 주석까지 나서서 여러 차례 강력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만큼 사활적인 문제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한테 사드 배치는 사활적인 문제라기 보기 어렵다. 또한 양국의 여론에도 큰 차이가 있다. 중국 언론은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상당수 국민들이 이 문제를 알고 있고, 그래서 강력한 대응을 주문한다. 반면 미국 언론에선 단신으로 취급되고 있고 그래서 사드 배치를 철회하거나 재검토한다고 해서 미국 국민들이 격앙된 반응을 보일 가능성은 전무하다.
한미동맹에도 별 지장을 주지 못한다. 동맹 강화론을 주창해온 오바마 행정부와 힐러리 클린턴 캠프가 한국 내 사드 배치가 철회되거나 유보된다고 해서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는 조치를 취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럴 경우 동맹 회의론을 품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를 돕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아울러 미국이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에 접어들었고 오바마 행정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만큼, 한국이 사드 배치 철회나 재검토를 요구한다고 해서 이를 문제 삼을 수 있는 정치적, 시간적 여력도 거의 없다.
오히려 미국의 차기 정부가 사드 배치를 재검토할 가능성도 있다. '돈'을 중시하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 예산으로 구입한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는 걸 추인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한국 돈으로 사 가라'면서 말이다. 클린턴이 되더라도 그대로 밀어붙이기는 쉽지 않다.
임기 말에 있는 오바마 행정부는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대응에 크게 개의치 않고 있지만, 임기를 시작해야 할 클린턴의 입장에선 사드 배치가 초래할 '사실상의 중러 동맹' 출현이 크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부시 행정부 때 합의되었던 폴란드 지상요격체제(GBI) 배치를 철회하고 러시아와의 관계 재설정(reset)을 시도했던 사례도 있다.
더불어민주당에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