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범죄 판결과 처벌은 놀랄만큼 안이하다. 한국에서 '집행유예'와 '무죄' 판결을 받은 것과 유사한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에 대해 미국 법원은 각기 '최소 24년 형'과 '최소 100년 형'을 선고했다.
Charlotte Obserber 갈무리
2014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앞의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샬롯에서 40대 남성이 13살 여아를 강간한 것이다. 그는 올해 재판에서 '최소' 24년 형을 선고받았다. '한국적 사고'로 보면 과한 판결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 정도는 약과다. 올 2월, 13살 소녀를 강간한 오마하의 39세 남자는 최소 100년, 최장 160년 형을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기혼남이었던 그는 임시로 돌보던 아이를 유혹해 성행위를 하게 만들었고, 임신까지 시켰다. 재판 과정에서 소녀는 여러 번 말을 바꿨다. 주위 사람에게는 스스로 성관계를 했다고 말하다가도, 재판 과정에서는 '성관계는 갖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등 진술에 일관성을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재판부는 그들의 성관계가 '합의에 의한 것인지' 여부를 따지지 않은 채 강간으로 기소했다. 미성년자와는 '성적 합의'자체가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많은 주처럼, 네브라스카주 형법은 성인이 16세 미만의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성행위를 하는 경우,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무조건 강간으로 간주한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2011년 연예기획사 대표가 15살 여중생을 수차례 성폭행해 임신까지 시킨 것이다. 임신한 피해자는 그의 집에서 기거하다가 출산 뒤 성폭행을 당했다면서 경찰에 신고했다. 피고는 '연인관계'라고 주장하면서 '합의에 의한 성관계'를 주장했다.
1심에서는 징역 12년이 선고되었고, 2심에서는 징역 9년으로 줄었다. 그러다가 2015년 10월에 열린 파기환송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구속된 피고를 면회하고 문자를 보내는 등의 행동에 비추어 '의사에 반한 성폭행은 없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렇게 상반된 견해를 듣고 보며 자란 남자들이 여자를 대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한 나라에서는 끔찍한 범죄가 한 나라에서는 '연애'가 되기도 하고, 한 나라에서는 여성 학대가 다른 나라에서는 '여자 다루는 요령'이 되기도 하며, 한 나라에서는 '여성 혐오에 대한 문제 제기'가 '불쾌한 남자 혐오'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당신은 '잠재적 가해자' 아니라고?자신의 의식이 형성된 사회적 담론과 제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한,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여성들을 위협하는 끔찍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여성 혐오적 사고가 '자연스럽게' 일상에 스며들면, 남자는 스스로 가해자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여자는 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식하기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지 말라'며 흥분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일상에서 가해자 역할을 해 왔다는 깨닫지 못할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이번 사태를 여성보다 남성들이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성들이 정말로 항의해야 할 곳은, 오직 '혐오'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경찰과 '여혐' 대 '남혐'이라는 생뚱맞은 대결구도를 끄집어내는 질 낮은 언론이다.
가해자 취급받는 게 불쾌한가? 강남 살인사건을 둘러싼 '가해자' 논란은 남자들에게 '기분'의 문제일지 모르나, 여자들에게 삶과 생존의 문제다. 정말 끔찍한 것은 잠재적 가해자 '취급'받는 게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상적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가해자가 되고 싶지 않다면, 흥분하기에 앞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나, 주위, 사회를 돌아볼 일이다. 자신을 가해자로 만들거나 만들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다.
'여성 해방이 곧 남성 해방'이라는 말이 이번만큼 설득력을 가진 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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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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