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인생 30년을 맞이한 가수 김원중. 그는 여전히 '오월광주'를 산다.
강성관
<바위섬> <직녀에게> 등 누구나 알만한 히트곡도 있다. 여전히 전국 각지로 공연을 다닌다. 그런데도 그는 주 활동무대로 서울이 아닌 광주를 고집하고 있다. 노래 인생 30년을 맞이한 가수 김원중 이야기다.
"한국은 서울과 지방으로 나눌 만큼 그렇게 큰 나라가 아니다. 대한민국 서울동, 광주동, 부산동 등 난 각 정주공간을 이렇게 동네 개념으로 본다. 현실적으로 서울에 경제적 문화적 집중이 있다는 것 인정한다. 하지만 서울은 용광로와 같은 거대도시여서 나와 같은 개인들이 지니고 있는 개성을 녹여버리는 느낌이다.
광주에 산다는 것은 이 땅이 내게 주는 향토색의 양분을 자연스럽게 섭취하고 내 디엔에이(DNA)에 저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의 달거리공연을 체코에서 보고 전화 거는 세상이다. 거주하는 공간 개념은 중요치 않다. 오히려 가수가 음악적으로 향토색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서울이 아닌 곳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매력적이다."그 많고 많은 동네 중에 하필 광주다. 그래서 그의 음악엔 광주 이야기가 많다. 그가 노래인생 30년을 맞이해 이번에 발표한 음반에도 역시 광주 이야기가 많다.
"보고 느낀 것을 추려냈을 뿐인데 광주에 관한 이야기가 많더라, 의도하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그냥 그렇게 되더라. 2천년 전에도 광주에 달이 뜨고, 사람이 살고 물이 흘렀듯이 이 세상 다른 어느 곳에서도 달이 뜨고 사람이 살고 물이 흐른다. 이렇듯 시공간을 초월해 보편성을 획득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러워지는 것 같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그렇게 보편성을 이룬 가장 광주적인 노래가 가장 세계적인 노래가 되는 것이다."그 광주에 다시 '오월'이 왔다. 가수 김원중을 '스타'로 만들어준 노래 <바위섬>이 80년 오월에 학살당한 광주를 위로하는 곡이었다는 것은 운명의 역설이다. 가장 잔혹한 학살의 상처를 그는 가장 담담하고 소박하게 어루만졌고, 세상은 눈물을 감춘 그의 진혼곡에 갈채를 보냈다. 가수 김원중에게 오월은 무엇인가.
"그냥 가수 김원중의 오월이 아니다. 5.18당시 그 현장에 있었던 가수 김원중의 오월이다. 그 당시 학생이었고 전남대 정문 앞에서 계엄군을 향해 첫 번째 돌을 던졌던 가수 김원중의 오월이다. 계엄군의 무자비한 몽둥이를 피해 도망갔던 전남대학생 김원중의 오월이다. 그 사건도 충격적이었지만 두려워서 도망가 숨었던 것도 내겐 너무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런 표현을 쓰고 싶지 않지만 오월은 내게 천형(天刑)같은 것이다. 이 정도했으면 할 만큼 했지 않나 싶지만 아무리 노래하고 또 노래해도 그날의 빚, 그날의 책임감은 어떻게 해도 없어지지 않더라. 그런 점에서 나는 '오월의 일꾼' 같은 존재다. 광주의 오월에게 빚진 마음, 오월의 슬픔 같은 것을 음악을 통해 자부와 긍지, 즐거움이 있는 사명감으로 바꾸어가는... 그래서 지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