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산에서 바라본 병영양조장.
허시명
그런데 제2공장을 둘러보다가 그 뒤편으로 야트막한 언덕 위에 서 있는 큼지막한 정자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언덕에는 삿갓 형태의 비갈을 쓴 비석이 있고, 쉼터 정자도 있었다. 마을의 조산(造山), 만들어진 산이라고 했다.
언덕에는 조산에 관련된 안내글이 있었다. 전라도 병영성의 앞쪽이 공허해서 액막이로 산을 만들었다는 조산설(造山說)과 전라병마절도사가 인근 천불산, 만불산, 억불산보다 더 높게 만들어 병영의 위상을 높이고자 했던 조산설(兆山說)이 있다는 것이다. 후자의 조산설에 따르면 조불산이 돼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언덕이 너무 아담하다. 병영의 자부심을 담으려 했다면 모를까, 벌판으로 탁 트여 있는 병영 마을의 열린 구조를 보완하려는 비보 풍수의 조처로 보인다. 정자나무는 세 그루인데, 가장 큰 나무는 수령 350년 된 느티나무였다.
느티나무 앞에는 제단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음력 6월 15일에 모여 이곳에 제물을 올리고 유두제(流頭祭)를 지낸다고 했다. 나로서는 문헌에서만 보던 유두제의 실제를 이곳에서 처음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유두'는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에서 따온 말인데,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아 부정한 것을 씻어낸다는 뜻이다. 이날 재앙을 물리치는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유두연(流頭宴)이라 하고, 이때 마시는 술을 유두음(流頭飮)이라고 부른다.
물론 나는 유두음의 실체를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어떤 술로 유두음을 할까 늘 궁금했었다. 이제 그 궁금증을 풀 수 있는 순간이 온 것이다.
김견식 대표에게 여쭤보니 농악과 함께 유두제를 올린다고 했다. 농부들은 이날 써레씻이를 한다고 했다. 모내기도 끝나고, 논을 갈았던 써레가 더 이상 필요없게 되자 이를 씻어서 정리해두는 날이라고 했다. 마을 사람에게 물으니 강진의 다른 마을에서도 써레씻이를 하는 관습이 전해온다고 했다. 물론 기계의 도움을 받아 벼농사를 지내게 되면서 이제 써레씻이를 하는 농부가 얼마나 될까 싶지만, 마을 사람의 기억 속에는 또렷이 남아있는 행사였다.
그렇다면 유두날 농악을 울리면서 마신 술은 당연히 농주인 막걸리였을 것이다. 설날 도소주, 정월대보름의 귀밝이술, 단오 창포주, 추석 신도주, 중양절 국화주 등으로 이어지는 절기주 계보 속에 유두날 유두음의 실체도 보였다.
하멜의 흔적이 남아있는 돌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