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도덕인가?책 표지
한국경제신문사
다루고 있는 주제 역시 의미가 있다. 책은 <정의란 무엇인가>가 그러했듯 많은 딜레마적 상황을 예로 들며 현대 철학이 다루는 가장 인기 있는 주제, 즉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대립을 도마 위에 꺼내 놓는다. 저자는 두 이념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들이 공존하고 발전하기 위한 방법까지 제시한다. 그가 내린 결론은 책의 제목이 가리키듯 '도덕'이다.
언제나처럼 샌델은 그의 주장 주변에 충실한 사례를 배치한다. 이번엔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이 벌인 오랜 정치투쟁과 그 과정에서 도덕이 쓰인 역할이 그것이다. 샌델은 공화당이 도덕적 담론을 선점함으로써 수십 년간 민주당에 대한 정치적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며 민주당이 빌 클린턴 대에 이르러서야 반격에 나섰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어 과거 정치에서 도덕이 발휘한 힘을 역설하고 다가올 세상에서 도덕이 담당할 수 있는 역할을 강변하는데 이는 곧 이 책의 주제와 맞닿는다.
'도덕과 종교를 무시하는 정치는 곧 그 자체의 환멸을 초래한다. 정치적 담론에서 도덕적 공명이 부족한 경우, 더 큰 의미의 공공생활에 대한 갈망은 바람직하지 못한 방식을 찾아낸다. '도덕적 다수파' 같은 단체들은 무방비의 공공 광장을 편협하고 옹색한 도덕주의로 표현한다. 근본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들이 발을 들여놓기 두려워하는 영역에 뛰어든다. 또한 환멸은 더욱 세속적인 형태를 띤다. 공공 문제의 도덕적 차원을 다루는 정치적 이슈가 부재한 상황에서 대중의 관심은 공직자들의 개인적 비리에 집중된다. 공공담론은 점점 더 타블로이드와 토크쇼, 결국엔 주류 언론까지 합세해 스캔들과 센세이션, 고백에 사로잡힌다.' - 260, 261p
건강한 도덕이 부재한 자리를 불건전한 도덕이 채운다는 그의 판단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샌델은 친절하게도 미국의 유명한 사례들을 소개하기까지 한다. 도덕에 대한 대중의 욕구가 존재하며 이를 자극하고 효과적으로 이용한 정당이 회피한 정당을 압도했다는 그의 주장에선 탁월한 통찰이 읽힌다. 물론 도덕적 논쟁은 낡고 인기 없는 주제로 여겨질 수 있다. 자유주의자와 공동체주의자 모두에게 그렇다. 샌델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국가의 중립성에 대한 열망은 정치와 법률체제 전반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열망은 자유주의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미국의 모든 정치 현상에서 골고루 나타난다. 자유주의자들은 공립학교의 기도시간이나 낙태 금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도덕 기준을 광장에 적용하려는 시도 등에 반기를 들 때 중립성을 호소한다.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정부가 시장경제 원리에 도덕적 규제(안전한 노동환경, 환경 보호, 분배 정의 등)를 부과할 때 저항하는 수단으로 중립성을 부르짖는다.' - 270p도덕이 실종된 사회에서 다시 도덕을 논하다하지만 논의의 끝에서 그가 가닿는 결론은 공동체의 도덕이다. 보다 정확히는 공동체에 대한 도덕의 개입이다. 다원주의적 중립이란 이름으로 도덕이 실종된 사회에서 다시 도덕의 역할을 논하는 게 이 책의 진정한 목적인 것이다.
샌델이 보기에 국가의 도덕적 중립이란 원칙 아래 돌아가고 있는 현재의 세계는 그리 오랜 전통을 갖고 있지 않다. 기껏해야 지난 반세기 동안 발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샌델은 공공선에 대해 숙고할 줄 아는 사람들의 사회를 그린다. 그리고 이 같은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과 마찬가지로 타인에게도 자유가 있다는 사실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소속감과 책임감, 공공의 유대가 그것들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익히 소개된 공리주의와 존 롤스의 이론은 이 책에서도 차례로 소개되며 저자의 주장에 힘을 싣는다. 각 이론이 지닌 가치와 한계가 언급되는데 책을 읽다 보면 그것들이 샌델의 철학에 상당한 자양분이 되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 존 롤스의 차등원칙이 샌델이 생각하는 도덕의 근간을 이룬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권리가 공리주의적 원칙에 근거할 수 없다면, 달리 정당성을 증명할 방법은 무엇일까? 롤스는 이 문제에 대해 기발한 사고실험에 기초한 일종의 사회계약론을 해답으로 제시했다. 즉 자신이 부자인지 가난한지, 강자인지 약자인지, 건강한지 허약한지도 모르고, 자신의 인종, 종교, 성별, 계급도 모른 채 사회계약을 맺는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롤스는 이러한 '무지의 베일' 뒤에서 선택하는 원칙들은 부당한 조건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기 때문에 공정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우리가 무지의 베일 뒤에 있다고 상상하면 두 가지 사회 지배 원칙을 선택한다고 말했다.첫 번째는 모든 시민들에게 평등한 기본 자유(언론, 결사, 종교)를 제공하는 원칙이고, 두 번째는 사회에서 가장 못사는 구성원에게 이익을 제공하기 위한 불평등(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허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소득 차이가 부유한 사람들을 의료직에 유인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만,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에서 가장 불리한 구성원을 돕는 경우에만 의사가 경비원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정당해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롤스의 '차등원칙'이다.' - 263, 264p샌델은 롤스의 차등 원칙을 소개하며 한 사회의 개인이 다른 개인에 대해 벗어버릴 수 없는 책임이 있음을 상기시킨다. 샌델에게 있어 롤스의 사회계약론은 현 사회가 처한 개인주의와 가치중립의 문제점에 대한 해법이다. 타인에 대한 책임과 그를 뒷받침하는 도덕체계의 구상이야말로 샌델이 이 책의 끝에서 내보인 결론이기 때문이다.
폭주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와 그 밑바탕이 되고 있는 도덕적 중립성은 더는 지속돼선 안 된다는 게 이 책에서 보인 샌델의 결론이다. 사회 구성원들은 어차피 도덕적 문제에 대한 기본적 욕구를 갖고 있으며 이왕이면 이 욕구를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현시키는 것이 공동체에 있어서도 긍정적이라는 게 책의 결말이다. 바람직한 방향이란 곧 너와 내가 남이 아니란 사실을 인정하고 그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정치공동체가 시민들의 인격을 형성시킬 수 있다면, 나쁜 공동체가 나쁜 인성을 육성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 분산된 권력과 다양한 시민교육 제도가 그런 위험성을 줄일 수는 있지만 100%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한다.' - 293p'왜 도덕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마이클 샌델의 답은 바로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였다.
왜 도덕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진환.이수경 옮김,
한국경제신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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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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