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왼손으로아빠의 마지노선
정가람
거기까지가 나의 마지노선이었다. 그림은 양보하더라도 글씨만은 오른손으로 쓰게 하고 싶었다. 어쨌든 우리의 모든 글자 체계가 오른손잡이 중심으로 만들어진 이상 왼손잡이는 불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지하철 출입구부터 가위, 컴퓨터 마우스 등등 우리 사회에서 왼손잡이는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다행히 이런 내게는 든든한 우군이 있었다. 양가 부모님이셨다. 특히 아버지는 가장 강력하게 손녀의 오른손 글씨를 주문하셨는데, 전화 통화를 하거나 얼굴을 볼 때마다 매번 오른손으로 글자를 쓰냐고 질문하셨다. 그때마다 말끝을 흐리거나 얼버무리는 까꿍이. 대신 녀석은 오른손으로 편지라도 썼으면 세상이 떠나갈 듯 자랑을 해댔다.
반면 아내는 나의 강요에 회의적이었다. 오른손이 왼손보다 글씨 쓰기는 편할 수 있겠지만, 까꿍이가 스트레스를 느끼느니 왼손으로 쓰게 놔두자는 의견이었다.
"그냥 왼손으로 쓰게 놔두자.""안 돼. 나중에 자세 삐뚤어지면 어떡해. 최소한 글씨라도 오른손으로 쓰게 해야지.""하긴. 요 며칠 전에 허 지부장을 만났는데 시집 간 딸이 그러더래. 거기도 왼손인데 시집에서 왼손으로 과일 깎으려니까 부끄러웠다고. 자기 어렸을 때 오른손 좀 쓰게 해주지 그랬냐고.""그치? 거봐. 그러니까 오른손으로 글씨 쓰게 해서 양손잡이로 만들어야 해.""그런데, 그래도 이렇게 강제로 하는 건 아닌 것 같아. 세계에서 우리만 강력하게 오른손잡이를 고집한다던데? 오바마도 왼손잡이더만.""몰라. 어쨌든 오른손으로 글씨 쓰게 할 거야.""이럴 때 보면 당신 참 보수적이야."졸지에 '보수적인 아빠'가 됐지만, 그래도 까꿍이의 오른손 글씨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의 고집이 궁극적으로 아이를 위한 것이라는 굳은 믿음 때문이었다.
"편지 쓰기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