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세 미술관의 고흐 그림, <아를의 침실>
김윤주
서른셋의 고흐가 이제 막 파리에 도착했다. 애초에 동생 테오와 약속해 둔 6월보다 몇 개월 빠른 방문이다. 동생은 나름의 계획이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같이 살기엔 불편하니 형과 함께 살 수 있을 만한 좀 더 큰 집으로 옮긴 후 형을 불러들일 참이었던 것이다. 형의 즉흥적인 결정과 실행이 난감하고 야속했지만 어쩌겠는가. 결국 둘은 라발 가의 좁은 아파트에 얼마간 머무른 뒤 몽마르트르에 새로 구한 집으로 이사를 한다.
이곳에 머물면서 고흐는 당시 한창 활발히 활동 중이던 인상파 화가들을 만나 교류하게 된다. 인상주의 단체전에 동참한 적은 없지만 새로운 사조를 이끌어가는 파리의 화가들과 폭 넓게 교류하며 영향을 받는다.
실제로 파리에 오기 전 네덜란드 시절의 작품들을 보면 <감자 먹는 사람들>(1885)에서와 같이 주로 농촌을 배경으로 한 인물들과 그들의 생활상을 어두운 색조로 그려낸 그림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반해, 파리 이후의 그림들은 훨씬 더 밝고 다양하고 선명한 색조를 시험하고 있다.
몽마르트르에 있던 페르낭 코르몽의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툴르즈 로트렉도 만나고 후에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된 에밀 베르나르도 만난다. 쇠라, 폴 시냑 등과 함께한 1886년 전시회는 후기 인상주의의 문을 연 순간으로 평가받고 있다.
1887년에는 후에 잠시 함께 살며 마지막 삶의 순간 한때를 공유하게 될 폴 고갱도 만난다. 파리를 떠나 남프랑스 아를로 내려간 이후에도 파리에서 만난 드가, 모네, 르누아르, 시슬레, 피사로 등 인상주의 화가들과 함께 화가 공동체를 세울 꿈을 꾼다.
파리에 체류한 2년간 고흐는 몽마르트르의 경치를 담은 여러 점의 풍경화와 정물화, 자화상 등 200여 점의 작품을 완성한다. 이십대 후반에야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10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2천 여 점이나 되는 작품을 남겼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그의 그림 대부분은 이 파리 체류 시절과 그 이후 아를에서 그린 것들이다. 1890년 5월 서른일곱 젊은 나이에 안타까운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전 얼마간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