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중에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샌드위치'도 있다.
배지영
제굴은 "엄마, 영화 <아메리칸 셰프>볼 때 먹고 싶었지요?"라면서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영화 <스팽글리쉬>에 나왔다는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샌드위치'를 만들어서는 먹음직스럽게 사진 찍어주라고 졸랐다. 내가 좀 심드렁하니까 제굴은 수다스러웠다. <오므라이스 잼잼> 책에도 나온 유명한 샌드위치라고 지식 자랑을 했다.
"엄마, 파니니 머신 사주세요…. 에이, 근데 사지 마요. 샌드위치 만든다고 기계까지 사는 건 돈 낭비예요. 지난번 샌드위치는 BLT(Bacon, Lettuce, Tomato)였어요. 별명은 '샌드위치계의 왕자'. 보통은 마요네즈를 베이스로 까는데 나는 머스터드를 썼어요. 여기에 킹파뉴(잡곡식빵)를 쓰고, 달걀과 흑맥주를 곁들이잖아요? 그러면 영화 <스팽글리쉬>에 나온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샌드위치'예요." 나는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샌드위치'를 눈앞에 두고서 '세계에서 가장 슬픈 아줌마'를 떠올렸다. 그녀는 둘째 아이를 임신 중, 두 달째 대학 병원에서 누워만 있었다. 움직여서는 안 됐다. 조산 증세에 악성 빈혈, 임신성 당뇨까지 있는 그녀는 과일도 먹어서는 안 됐다. 그때 그녀가 먹고 싶어서 안달을 냈던 음식은 단 하나, 샌드위치였다.
날마다 도시락을 싸오던 그녀의 남편은 "몰래 먹어" 하면서 샌드위치를 사다줬다. 그녀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식전 당뇨 검사를 하는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견뎠다. 하필 그날,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할 만큼 당뇨 수치가 높았다. 그녀는 24시간 내내 아기가 못 나오게 자궁을 막아주는 주사를 맞았다. 철분제 주사도 함께. 거기에 인슐린 주사까지 맞으면 아기한테 무리가 갈 것 같았다. 그녀는 차마 샌드위치를 먹을 수 없었다. 내 이야기였다.
"엄마, 그때 병원에서 울었죠?""엉. (웃음) 샌드위치 못 먹어서 대성통곡했어. 창피하니까 이불 뒤집어쓰고 울었어. 근데 지금은 엄마도 성숙해졌지. 어금니 빼고 입안이 부르터서 네가 해 준 샌드위치도 못 먹잖아. 봐봐. 눈물 한 방울도 안 나지? 멀쩡하다고."제굴과 나는 동네서점에 갔다. 제굴은 <치즈수첩>을 골랐다. 나는 <오늘 뭐 먹지?>와 <향신료의 세계사>를 억지로 사주었다. 제굴은 학교 갔다 와서 밥상을 차리고, 온라인 게임 '하스스톤'을 보면서 그릇을 식기세척기에 넣고 부엌 정리를 한다. 나머지 시간에는 스마트폰과 '합체'해서 지낸다. 닷새 만에 밥을 먹게 된 나는 제굴에게 "책 좀 읽어" 잔소리를 했다.
"엄마, 힘내요! 밥 많이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