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
권우성
어느 날 30년생 소나무 8억 그루가 불쑥 솟았다면? 그것도 서울 하늘 아래에서... 경천동지할 일이다. 그럼 후쿠시마 원전 사태 때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한 핵발전소 한 기가 갑자기 필요 없는 상황이 됐다면? 핵발전소 2기를 추가 건설하겠다는 박근혜 정부는 움찔하겠지만 국민은 편안하다.
이건 현실이다. 2012년에 시작한 서울시 '원전하나줄이기' 캠페인은 소나무 숲처럼 막대한 온실가스배출량(563만 톤)을 줄였다. 핵발전소 한 개가 만드는 에너지양 200만TOE(에너지의 양을 나타내는 단위. 1석유환산톤은 석유 1톤을 연소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이다)를 절약했다. 2003년~2011년까지 1182개소였던 태양광 미니발전소는 2012년~2015년 사이에 1만929개소로 늘었다.
그 결과, 전국 평균 전력 사용량이 1.76% 증가할 때(2013년) 서울시는 1.4% 감소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밀양 할머니들에게 미안하다" "결국 서울과 수도권에 전기 가져오려고 하니까 생겨나는 문제잖아요, 송전탑이라는 게. 서울시민으로서, 서울시장으로서 (송전탑 싸움을 벌이는 밀양 할머니에게) 미안함과 책임감을 느끼죠. 그래서 에너지 자립도를 계속 높여나가겠다는 것이 원칙, 우리 비전이 됐죠."지난 8일 서울시청에서 만난 박원순 서울시장의 말이다. 박 시장은 사령탑을 맡고 공무원들도 뛰었지만, 이들만의 작품은 아니다. 서울 인구 6분의 1을 넘는 172만 명이 '에코마일리지'에 가입했다.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면 아파트 관리비, 병원비 등을 줄여주는 인센티브 제도이다. 세대수로 따지면 무려 40%가 참여했다. 이렇게 줄인 에너지가 66만TOE다. 서울시 2.7배 면적에 소나무 2억7천만 그루를 심은 효과다.
"이뿐만이 아니죠. 초중고 학생 중 2만2천명이 '에너지수호천사단'입니다. 아이들이 엄마에게 '왜 전기를 안 끄냐' 잔소리 하면 부모가 꼼짝 못합니다. 사무실을 찾아가 에너지 절약 방안을 제시하는 신종 일자리 '에너지설계사'도 있죠. 그린캠퍼스 대학생 홍보대사 60명이 서울 27개 대학에서 활약합니다. 상도 3동 성대골 등 35개소의 에너지자립마을이 있어요. 원전 한 개를 줄인 건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열정이었습니다." 박 시장의 트레이드마크인 '시민참여'. 단순 레토릭이 아니다. 2012년 4월부터 지금까지 무려 150번 모인 사람들도 있다. 원전하나줄이기 시민위원회다. 에너지 문제를 고민해왔던 시민단체, 종교계, 경제계, 교육계, 학계 인사들이다. '에코마일리지', '에너지수호천사단', '에너지 자립마을', '에너지 설계사' 등의 아이디어는 이런 시민거버넌스의 작품이다.
공공기관도 뛰었다. 백열등은 전력의 5%, 형광등은 40%, LED는 90%를 빛으로 바꾼다. 수명도 전구는 3천~7천 시간대지만, LED는 5만~10만 시간이다. 2011년 서울시와 산하 사업소에 설치된 LED는 7561개뿐이었는데, 3년 만에 45만3천개로 늘었다. 2013년에는 243개 지하철 역사 65만개 조명을 LED로 교체했다. 서울시는 2018년까지 공공조명의 100%인 220만개, 민간조명 2900만개를 LED로 바꾼다.
서울시의 원전하나줄이기 성과에 세계도 주목했다. UN공공행정상 우수상(2013.5), 2014 기후변화대응 행동우수상(세계자연기금-지속가능성을 위한 세계지방정부 공동주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