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애가 사용했던 스테로이드 연고- 심한 부위에만 바르는데,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효능이 놀라웠다.
정성화
처음 큰애가 집에 들어 왔을 때에는 우리는 아침마다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며칠에 한 번씩 이불빨래를 해야 했다. 더운 것을 못 참는 큰애는 거실에서 잠을 잤는데, 내가 아침 운동을 하고 집에 오면 큰애의 잠자리 주변에는 밤새 몸에서 떨어져 나온 각질이 눈처럼 쌓여 있었다. 그 상태에서 화장실에 간다 던지 하면서 그 근처를 부주의하게 돌아 다니면 온 집안에 각질이 뿌려진다. 그걸 진공청소기로 큰애나 내가 청소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청소기 돌아 가는 소리가 잦아 들었다.
"이제 각질이 별로 안 떨어지네. 좋아지는 게 느껴져?""응. 병원에 다니면서 너무 좋았어. 몸이 점점 나아 가는 것이 느껴지고, 각질이 많이 안 떨어 질 때 정말 기분이 좋았어."전남대병원에는 2주에 한 번씩 가서 진료와 처방을 받는데, 첫 2주가 지난 후 다시 병원을 방문했을 때 빠른 회복 속도에 의사도 놀랐다고 한다. 그러나 스테로이드는 장기간 복용할 수 없는 약이다. 간에 손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상태가 나아지자 바로 투여량을 줄였고, 나중에는 일상적으로 먹지 않고 상태가 심한 경우에만 먹고 바르는 것으로 처방을 받았다.
스테로이드 투여 중단은 정체상태와 같은 것이었다스테로이드 투여가 중단되자 바로 아토피의 반격이 있었다. 신기한 마음에 틈날 때마다 만져 보았던 뽀얀 얼굴 피부색이 다시 흐려졌고, 잠자면서 가려움에 습관적으로 긁는 어깨날개와 다리에는 아토피 증상이 눈으로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나타났다. 예전 같이 심하지는 않았지만 깔끔하게 나아지지는 않는 상태가 지속됐다.
지금 생각해보니 스테로이드 투여 중단은 격렬한 전투 후에 찾아 오는 정체상태와 같은 것이었다. 일방적으로 밀리다가 스테로이드라고 하는 지원군의 도움을 받아 실지를 회복했지만 지원군은 자기 임무를 다하고 철수를 해버렸다. 지금부터는 스스로의 힘으로 싸워야 한다. 지원군이 빠지면서 약간 밀리긴 했지만 예전 같이 형편없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이런 정체상태를 타개하는 방법은 어느 한 쪽이 상대방을 압도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불가에서 말하는 불퇴전의 각오로 아토피를 압도할 수 있는 생활습관을 지키는 것도 아니고, 예전과 같이 엉망으로 관리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가 이어지는 것으로 보였다. 그것이 나를 답답하게 했다.
나는 이번 기회에 큰애가 아토피를 압도할 수 있는 체력과 상시적인 방어가 가능한 생활습관을 가지기를 바랐다. 여기에 더해 복학에 대비해 영어공부까지 욕심을 냈다. 그러나 큰애는 나의 이런 압박을 비켜가면서, 예전 같이 심하지는 않지만 패스트 푸드를 여전히 먹고 있었고,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은 하지만, 내가 원하는 '땀으로 운동복이 흠뻑 젖은 상태'까지 가는 것은 아니었다. 영어공부도 하기는 하는 것 같은데 영 성에 차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