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도서관 어린이실 내부암스테르담 중앙역 근처에 자리한 국립 도서관의 지하 어린이실은 놀이터처럼 꾸며놓았다. 전등의 모양까지 배려한 세심함이 놀랍다.
서부원
하긴 암스테르담 국립 도서관에 갔을 때도 그랬다. 그들은 도서관을 놀이터나 휴식 공간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 서가와 열람실의 구분이 없고, 책과 음악이 공존했으며, 심지어 도서관 내에 자체 방송국이 설치돼 있었다. 도서관 어디를 가든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책상이 갖춰져 있었고, 개방된 세미나실과 꼭대기에는 웬만한 마트 규모의 식당과 카페가 마련되어 있었다.
책만 아니었다면 어린이 놀이터로 착각했을 지하 공간은 모서리 없는 서가와 쿠션, 방 크기만 한 소파 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벽과 천장에 설치된 전등까지도 동심을 고려해 세심하게 디자인돼 있었다. 1층에는 내키는 대로 가서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는 피아노가 설치되어 있는가 하면, 층 전체가 다양한 음악을 꺼내 들으며 편히 쉴 수 있도록 앨범을 꽂아놓은 서가로 활용되는 곳도 있었다.
도서관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보며, 그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생각보다는 참 '편안하고 즐겁게' 공부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국립 도서관 꼭대기 식당에서 만난 두 어르신의 '학구열'은 잊히지 않는다. 족히 일흔 대여섯은 돼 보이는 두 어르신이 그리스어 초급 교본을 가지고 알파벳과 발음 기호를 서로의 노트에 적어가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연세에 다른 나라 말을 배워서 어디에 쓸까'라는 생각조차 불경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돋보기 안경 너머 그들의 치열하고도 해맑은 눈빛이 자못 감동적이었다.
규모의 차이는 있어도 위트레흐트 대학 도서관의 구조도 대개 비슷했다. 각 층은 물론 오르내리는 계단조차 개방돼 있어서 소란스럽고 어수선할 법도 하건만 다들 괘념치 않는 표정이었다. 귀마개를 끼고 면벽수도 하듯 공부하는 우리네 도서관 풍경과는 너무도 달랐다. 어디서든 책과 노트북을 사이에 두고 서로 대화를 했고, 그렇다고 눈치를 주는 사람은 없었다. 이래서야 제때 졸업은 할 수 있으려나 싶을 정도였다. 참고로, 네덜란드는 별도의 대학 입학시험이 없다. 대학 진학이 쉬운 만큼, 졸업하고 학위를 따기가 매우 까다롭다고 한다.
열람실과 통하는 구내식당도 그 흔한 출입문 하나 없이 개방돼 있다. 소란스러움도 그렇지만, 음식 냄새가 열람실과 서가에 배어들지나 않을지 괜한 걱정마저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들어서자마자 네덜란드 치즈의 독특한 향이 코끝을 찔렀다. 뷔페식으로 원하는 음식을 각각 그릇에 담은 뒤 무게를 달아 계산하는 방식이었는데, 그래선지 다들 잔반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특이한 건, 도서관 내에서는 현금 결제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식당이나 매점을 이용할 때는 물론, 심지어는 자판기에서 0.5유로짜리 커피 한 잔을 뽑아 마실 때도 현금을 사용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신용카드가 보편화됐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현금과 겸용하도록 돼있다. 듣자니까 이곳 대학 자체적으로 화폐 없이 생활하는 실험을 하는 중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식당의 운영방식부터 도서관의 구조, 대학 건물의 배치, 나아가 위트레흐트 거리 곳곳이 온통 낯설다 못해 '깨는' 것투성이다. 명색이 '대학 도시'인데, 관행과 편견에 도전하는 것이야말로 대학의 본령이라고 생각하면 딱히 놀랄 건 없다. 그러나 대학이 도시와 함께 호흡하고 있는 모습은 부럽기만 하다. 아참,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위트레흐트는 '대학 도시'가 아니라, 도시가 곧 대학이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