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경기 진행 요원말을 걸어 주면 너무 좋아 했다.
정성화
외국에서 골프 경기를 구경하면 좋은 점이 있다. 한국에서는 치열한 경쟁 때문에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스타 선수의 플레이를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스타이지만 외국에 나가면 별로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에 경쟁 갤러리가 별로 없다. 시합 때마다 수 백 명의 갤러리를 몰고 다니는 스타선수가 미국 LPGA에 진출하면 거의 홀로 다녀야 하고, 이 때문에 슬럼프에 빠지는 선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날도 갤러리라고 할 만한 인원이 붙은 선수는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가 유일한 것 같았다.
아내와 같이 경기를 구경하면서 경기진행요원이 거의 70대 할머니, 할아버지 들이라는 점에 놀랐다. 여기도 고령화가 많이 진행된 모양이다. 덕분에 한번 말을 붙이면 친절한 설명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빨리 다른 홀로 이동해야 하는데 필요한 내용만 듣고 말을 끊기가 곤란했다. 대학에 다닐 때 고향집에 가면 친척 할머님들이 내 손을 잡고 한참 동안 놓아주지 않았다. 나도 저 나이가 되면 그렇게 사람이 반가워질까?
이국에서의 골프 갤러리 경험을 끝내고 우리는 다시 모여서 호주에서의 마지막 바비큐를 근처 공원에서 즐겼다. 언제 다시 올까 애틋한 마음에 나는 나도 모르게 계속 큰애의 어깨를 감싸안고 큰애는 자꾸 빠져 나가려고 하고. 지금 내 심정이 대학생 시절 내 손을 잡고 한참 동안 놓아 주지 않았던 친척 할머님들과 비슷하지 않을까.
요리는 창의적인 작업이며 기본기를 잘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이번 글에 윌리엄 앵글리스의 커리큘럼을 소개하기로 했는데 호주 여행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다. 어쩔 수 없이 앞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에 조금씩 나눠 적어볼까 한다. 먼저 윌리엄 앵글리스의 쉐프 양성과정은 2월과 8월 1년에 두 번 개설되고 각 과정은 20주로 구성돼 있다. 10주 교육이 끝나면 1주일의 휴식기를 가지고, 다음 10주 교육이 끝나면 한 달 정도의 방학이 주어진다.
학교에 입학하면 첫 학기에는 요리에 필요한 기본적인 기술을 두루 배운다. 입학하기 전에 한번도 요리를 해보지 않은 학생들을 요리과정에 연착륙 시키는 과정으로, 요리에 눈을 뜨고 장비 사용법을 익히게 힌다는 의미가 강하다. 요리는 창의적인 작업이며 기본기를 잘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2학기부터는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실전적인 트레이닝이 이뤄진다.
큰애의 설명을 들으면서 내가 이해한 1학기 수업내용의 아주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여기에서 말하는 단계는 내가 나름대로 정의한 것이다.
먼저 1단계에서는 나이프, 팬, 온도계 등의 요리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운다. 큰애는 야채 썰기, 마늘 다지기, 파슬리 초핑(Chopping)과 같은 기본적인 장비 사용법을 익힌 후 바로 크라페, 닭가슴살 돈까스 등을 만들었다고 한다. 오후에는 이론 강의, 다음날 오전에는 실습을 하고 마지막 날에는 이론과 실기시험을 각각 본다.
2단계에서는 'Wet method'라고 하여 물, 육수, 포도주와 같은 액체를 매개로 한 요리방법을 배운다. 체계적이고, 한편으로는 재미있기도 하지만 전체 레시피는 너무 방대해서 그냥 요리법 명칭만 적어 보았다. 명칭은 내가 나름대로 번역 했는데, 적당한 용어를 모르는 경우에는 그냥 발음대로 적었다.
1일차 - ① 끓이기(Boiling), ② 약불로 요리하기(Simmering), ③ 삶기(Poaching), 2일차 - ④ 찌기(steaming), ⑤ 전자레인지 사용법, 3일차 - ⑥ 스튜잉(Stewing), ⑦ 브레이징(Braising)4일차 – 평가인터넷을 찾아 보니 3일차의 스튜잉은 고기, 채소 등을 적당한 크기로 썰어 기름에 볶은 후 육수를 부어 약한 불에서 끓이는 조리법이고, 브레이징은 식품을 소량의 기름으로 갈색이 돌 때까지 조린 후 물이나 포도주를 역시 소량만 넣어서 뚜껑을 덮어 끓이는 요리방법이다. 스튜잉과 브레이징의 차이점은 끓일 때 붓는 액체의 양이라고 한다. 푹 잠기면 스튜잉이고 소량만 뿌리면 브레이징이 된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사람의 능력은 생각보다 크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길이 보이지 않지만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번쩍하고 가야 할 방향이 보인다. 커리큘럼을 계속해서 보니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하고, 실습과제를 보면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되지만 막상 부닥치면 헤쳐 나갈 것으로 믿는다. 큰애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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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할머니가 골프장 진행요원? 여기선 가능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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