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애 1학기 성적표 일부-‘유출 시 피의 복수가 있을 예정’이라는 큰애의 엄포 때문에 성적부분은 삭제를 했다. 가장 오른쪽 열에 있는 ‘배정시간’을 보면 과목별 중요도를 짐작할 수 있다.
정성화
이제 디테일은 사라지고, 아련한 느낌만이 남아 있는 여행 기억을 글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을 때, 1학기를 마친 큰애가 성적표를 메일로 보내 왔다. 'D'가 하나도 없는, 내 소박한 바람을 충족시켜 주는 성적표였다.
대학에 입학해서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장학금을 받은, 작은 애의 성적표에서 느꼈던 기쁨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뭐랄까. 배움의 길에 다시 들어선 증거를 받은 느낌, 돌을 전후에서 큰애가 처음 벽을 집고 일어나 걸음마를 시작하였을 때 느꼈던 신기함이랄까.
솔직히 도저히 배움의 실타래를 잡은 것으로 보이지 않는 큰애의 고등학교, 대학교 성적표에서 받았던 낙담에서 비로소 벗어나 나를 안도하게 만드는 마법의 메일이었다. 공부 잘 하는 자녀를 둔 부모님들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되겠지만.
윌리엄 앵글리스에서는 수시평가를 한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이렇게 모아서 시험을 치르지 않고, 요리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17개 과목으로 세분하여, 해당 과목 수업 진행 중에 수시로 평가한 것을 종합하여 수료 여부를 판단한다.
큰애 이야기에 의하면 17개 항목 중에서 이론만 있는 과목은 주로 'C'를 받았고, 이론과 실습이 같이 있는 항목은 평균을 내는데, 이론은 'C'에서 'B'로, 실습은 'B'에서 'A'로 발전 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주로'B', 학기가 끝나갈 무렵에는 'A'도 받았다고 한다.
예를 들면 'Work effectively with others(다른 동료들과 협력하여 효과적으로 일하기)' 과목은 'C'를 받았는데, 이 과목은 동료 학생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 한 결과를 평가 받는 순수 이론 과목이다. 실습은 샐러드나 소스 농도 조절과 같은 섬세한 손길을 필요로 하는 요리 과목이 어려웠다고 한다. 'D'를 받은 과목은 그 다음 학기에 다시 수강해야 하는데, 한국과 달리 그에 해당하는 등록금을 추가로 납부해야 한다.
큰애의 성적표를 분석해보니 시간이 많이 할당된 과목은 거의 'A', 'B'를 받았고, 10시간 내외의 짧은 시간이 배정된 과목은 'C'가 많았다. 이건 영어실력 때문인 것 같다. 강의가 길어지면 큰애가 모자란 영어 실력을 다른 방법으로 커버할 기회가 많아지고, 짧은 강의는 그럴 여유가 없이 끝나 버리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큰애의 성적표를 반복해서 보고, 1학기 커리큘럼을 여러 번 읽으면서 처음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글자들이 이제는 눈에 들어 오기 시작했다. 젊었을 때 변리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법전 읽는 방법을 익혔던 것처럼, 요리 공부하는 아들을 둔 덕분에 요리학교의 커리큘럼을 어느 정도 읽고 이해하게 되었다. 다음 이야기에 그동안 파악된 내용을 내 수준에 맞게 간략하게 정리하여 소개해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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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큰 아들이 다시 걸음마를 뗀 기분, 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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