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굴이가 엄마를 위해서 차려준 낮밥
배지영
"엄마, 나 골치 너무 아파. 진짜 장난 아니게 아파요." "그거 백수병이야. 온종일 잠만 자고 있으니까 그렇지. 나가서 걸어 다녀봐." "인정 못 해. 꽃차남 유치원 갔다 오면 누가 봐요? 저녁밥은 누가 하고요? 엄마 점심은 누가 차려줬냐고요? 그거 다 내가 한 거잖아요."
억울하다. 나는 '고딩' 아들이 차려주는 저녁밥을 먹고산다. 하지만 낮밥까지 몽땅 얻어먹는 건 아니다. 겨울방학, 제굴은 아빠가 차린 아침밥을 먹고 나서는 제 침대로 갔다. 음식 만화책 <오므라이스 잼잼>이나 <고독한 미식가 맛집 순례 가이드>를 펴고는 침대에 엎드렸다. 그 자세로 30분도 못 버티고 잠이 들었다. 오후 3시까지 내리 잤다.
여름방학 때는 급식소 봉사도 꽤 다녔다. 겨울방학 때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남편이 "급식소 가야지"라고 하면, 제굴은 삭발한 머리를 감싸고는 "아악, 나 아닌 것 같아"라고 절망한 척했다. 그러나 토요일에는 일찍 일어나서 잽싸게 씻었다. 친구들 만나서 놀고 저녁에 들어왔다. 온라인게임 '하스스톤'에는 정성과 시간을 쏟아서 상위 2%가 됐다.
"제굴아, 엄마 늦잠 잤어. 아침밥 못 먹고 일하러 간다. 잠자느라고 바쁜 건 아는데, 이따가 엄마 낮밥 좀 차려줄 수 있어?" "엄마는 풀 뜯어먹는 소가 아니에요, 고기반찬 좀 할게요"1월 27일 화요일, 나는 제굴에게 이렇게 말했다. "알았어요"라고 한 제굴은 흐느적거리며 일어났다. 거실로 나가서는 한숨과 짜증을 섞어서 "뭐냐고!"라고 했다. 유치원 다니는 동생 꽃차남이 깔아놓은 레고와 색종이가 널려있는 거실. 제굴은 그걸 치우고는 컵을 모아서 부엌으로 갔다. 설거지를 하고 부엌을 정리했다. 그러고는 장 보러 갔다.
"엄마는 자주 '나는 소하고 거의 같은 수준으로 풀을 먹을 수가 있다니까' 라고 하잖아요. 근데 엄마 식생활을 딱 보잖아요. 동물성 단백질이 너무 부족해. 과학 잡지에서 읽었는데요. 단백질이 부족하면, 인체에 치명적일 수도 있대요." 제굴은 엄마가 좋아하는 채소를 샀다. 1kg에 8000원 주고 닭 가슴살을 사고 쌈무도 샀다. 집에 오자마자 새싹 채소는 깨끗하게 씻었다. 닭 가슴살에 후추와 소금을 뿌려서 밑간을 했다가 프라이팬에 구웠다. 김치를 썰어서 접시에 가지런하게 올렸다. 엄마가 좋아하는 거니까, 냄비에 물을 붓고 두부를 넣어서 팔팔 끓여 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