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굴이는 먹고 남은 쌈 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했다. 어떤 블로그에서 알게 된 요리를 따라했다. 쌈 무에 무 싹과 닭 가슴살, 파프리카, 겨자 소스를 넣어서 만들었다.
배지영
햐! 점심 먹고 나니까 살 것 같았다. 나는 밥 맛있게 먹었다고 문상(문화상품권, 제굴이가 몹시 좋아함)이라도 줘야 할 판에 배은망덕해지고 말았다. "백수 생활도 나흘 뒤면 끝이야. 니네 학교 개학이야"라고 약 올렸다. 제굴은 요리책과 웹툰을 보고, 게임 하고, 잠을 잔 거 말고는 한 게 없다면서 봄 방학 때는 다를 거라고 했다. 나는 기대가 됐다.
"근데 엄마, 2월 1일부터 5일까지만 학교 가면 종업식하고 또 방학이에요. 그때는 좀 더 활기차게 놀면서 지낼 거예요.""아빠가 너보고 광주나 부산에 있는 맛집 탐방하고 오래. 버스 타고, 기차 타고 혼자서.""싫어요. 머리 짧다고 안 갔는데 급식소 봉사 가야지. 거기에 박소담(영화 <검은 사제>에 나온 배우) 닮은 누나도 있거든요." 1월 31일 일요일, 제굴은 내일부터 학교 가는 걸 믿을 수 없다고 투덜댔다. 목욕탕에서 샤워를 하면서는 괴성을 질렀다. 꽃차남은 이해불가. "형형, 들뜬 마음으로 학교를 가야지, 친구들 안 보고 싶어?"라고 물었다. 3주 전에 개학한 '선배'답게 "가면 재밌어"라고 격려를 해줬다. 동생의 말에 정신을 차린 제굴은 나보고 카풀비 냈느냐고 확인했다.
자러 들어간 제굴은 한참 있다가 거실로 나왔다. 느닷없이 삼색 슬리퍼(실내화)를 챙겨서 책가방에 집어넣었다. 2월 1일 오전 6시, 제굴은 알람이 울리자마자 일어났다. 혼자서 밥을 차려먹고, 똥을 누고, 샤워를 했다. 교복을 입고 소파에 앉아서 스마트폰으로 심슨 게임을 하다가 "다녀올게요" 하고 나갔다. 오전 7시 30분, 카풀버스 오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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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 아들의 겨울방학 "전 자야 해요, 곰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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