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인도 문시아리 초원에서 양떼를 돌보고 있는 양치기 사내 빤싱
송성영
히말라야 설산을 펼쳐놓고 있는 문시아리 언덕은 듬직한 나무 한 그루 없어 황량하기 이를 데 없다. 해발 2천 미터가 넘는 고지대다보니 바람 찬 언덕을 뒤덮은 풀들조차 뻣뻣하다. 한창 풀들이 무성하게 자랄 5월 중순이지만 초원은 잔디처럼 납작 엎드려 있다. 풀들이 다 자라기도 전에 소나 말, 양떼들이 한바탕 핥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언덕 위에 흰 점으로 흩어져 그나마 남아 있는 풀을 뜯고 있는 산양 떼들, 그 양떼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높다란 언덕 위에 두 마리의 양치기 개가 보인다. 녀석들은 히말라야 설산을 배경 삼아 양떼 주변에서 길게 늘어져 오수를 즐기고 있다. 오래전 달력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풍경이다. 높다란 산을 배경으로 양떼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그 옆에 양치기 개와 지팡이를 쥔 양치기가 조합을 이룬 전형적인 달력 사진 풍경이다.
나는 그 '풍경사진' 속, 두 마리의 양치기 개에게 다가갔다. 한가롭게 누워 있는 양치기 개들은 우리 집 개 곰순이를 닮았다. 양치기 개들 역시 곰순이처럼 털색이 검고 사자처럼 목둘레에 긴 털, 갈기가 있다.
내가 다가가자 녀석들은 앞다리에 깊이 파묻고 있던 머리를 들어 꼬나본다. 날렵한 몸에 눈매가 매섭다. 순하디 순한 곰순이의 축 쳐진 눈매와는 전혀 다르다. 털갈이 중이라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들개처럼 추레해 보이지만 눈빛은 초원을 누비는 늑대처럼 날카롭다. 그 어떤 산짐승이 달려든다 해도 결사항쟁으로 물러서지 않을 것처럼 용맹해 보인다.
히말라야 설산과 양떼를 배경 삼아 녀석들의 모습을 좀 더 그럴싸한 사진으로 담아내기 위해 이리저리 구도를 잡고 있는데 한 녀석이 성큼 일어선다. 그리고는 매서운 눈빛으로 슬금슬금 내게로 다가온다. 녀석의 목에 방울이 달려 있다. 하지만 방울소리가 나지 않는다. 먹이를 노리는 사자처럼 조심스러운 걸음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