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뒷산에서 바라본 시바산. 계곡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는 고리강가강의 원류.
송성영
거기서부터 경사진 산길을 올라야 했다. 무릎의 통증을 감수해 가며 경사도가 최소 40도는 넘을 거 같은 비탈진 산길을 타고 올랐다. 그나마 나선형 돌길이 깔려 있어 다행이었다. 어느 정도는 돌과 시멘트로 돼 있었는데 거의 대부분이 돌을 촘촘하게 세워 길을 만들어 놓았다. 그 돌길 끝에 모바일 송신탑 같은 것이 세워져 있었는데 통신사에서 송신탑을 점검하기 위해 깔아놓은 돌길인 듯싶었다.
산길 주변에는 가시 달린 꽃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내가 지나갈 때마다 작은 벌들이 윙윙거리며 떼 지어 날아올랐다. 내가 벌들의 꽃을 탐할 생각이 전혀 없듯이 벌들 역시 나를 공격할 의도가 없어 보였다.
경사진 산길을 오를수록 무릎이 점점 고통스럽게 꺾였다. 중간에 포기할까 싶을 정도로 고통스럽다. 어느 순간 내 육신은 정신에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산 하나만 넘으면 그토록 아름답다는 난다데비를 볼 수 있는데 그냥 되돌아 갈 수 없었다. 가는 데까지 가보자 마음을 다잡아 나갔다.
송신탑 부근에는 고사리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대가 길고 굵은 고비들도 즐비했다, 한 웅큼 꺾어 천 가방에 잘라 넣었다. 한국에서 만나는 고사리 굵기의 두 배는 될 듯싶다. 욕심이 생겼다. 작은 천 가방 가득 채웠다. 끓는 물에 삶아 말려 놓았다가 느끼한 인도 음식을 만났을 때 함께 먹으면 좋을 것 같았다.
송신탑에서 다시 가파른 산길을 타고 오르니 시바산이 손에 잡힐 듯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난다데비가 보이지 않는다. 난다데비 설산을 조망할 수 있는 앞산에 다 오른 줄 알았는데 눈앞에 겹겹이 산이다. 난다데비 주봉이 보이는 앞산 자락을 오르기에는 무릎에 너무 큰 무리가 갈 듯싶다. 거기다가 산길 주변에 가시가 달린 넝쿨 식물들이 곳곳에서 길을 막고 있었다.
중간에 너른 터가 있었다. 소나 말, 양떼들이 한바탕 지나간 듯했다. 너른 터에는 풀들이 잔디처럼 잘게 깔려 있고 군데군데 소똥이며 양들의 배설물이 보인다. 그리고 그 중간에 물웅덩이도 있다. 이곳에도 고사리 천지다. 코사니에서도 그랬듯이 북인도 사람들은 고사리를 먹지 않는 모양이다. 고사리 욕심을 버리고 폭신폭신한 풀밭에 주저앉아 있는데 난데없이 산 위에서 소 한 마리가 내려오고 있다.
녀석은 나와 눈길이 마주치자 잠시 머뭇거리더니 내가 있거나 말거나 어슬렁어슬렁 목초지로 내려선다. 그리고는 물웅덩이에서 물을 마신다. 몇 마리가 더 있을 줄 알았는데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물을 다 마신 녀석이 왔던 길로 돌아갈 생각도 없이 우두커니 서 있다. 사진 몇 장 찍어 놓고 나도 녀석처럼 멍하니 앉아 있었다. 세상 사람들의 마을, 속세를 벗어나 녀석과 나, 단 둘 뿐이다. 해발 2300고지가 넘는 이 높은 산에서 녀석이 혼자 서성거리고 있는 이유가 대체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