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아기의 모든 음성을 언어로 해석한다.
이준수
2015년 8월 18일, 아이가 태어났다. 아기가 발가락만 꼼지락거려도 신기하고 놀라웠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입으로 먹고 빨고 우는 것 이외에 옹알이를 하기 시작했다. 오~ 놀라워라! 아기가 언어 같은 것을 쓰려고 하다니 과연 인간의 자식이로구나.
"에음마"
"그래 그래, 엄마라고! 방금 엄마라고 분명히 그랬어. 이건 기적이야!"
"에우으ㅁ..."
"거봐! 내가 뭐랬어? 자기한테 엄마라고 했다고!"
아기가 동물울음소리에 가까운 음성을 내어도 부모의 욕심 많은 귀를 거치면 모두 완벽한 단어가 돼 들렸다.
출산 휴가가 끝나고 학교에 돌아간 날 나는 우리 반에 앉아있는 15명의 언어영재들을 봤다. 쉼 없이 말하는 그들의 수다력과 말꼬리를 잡으며 재미지게 놀이를 하는 유창함은 분면 언어영재의 특징이었다.
'내가 지금껏 아이들의 목소리에 이렇게 귀 기울인 적이 있었던가... 이 녀석들 우리 딸이랑 10살밖에 차이 안 나는데 대단하네.'
집에서 금이야 옥이야 키워졌을 모습들을 생각하니 아이들이 새삼스레 느껴졌다. 귀가 떨어져 나갈 만큼 떠드는 아이들의 말이 부모님들에게는 천사의 나팔소리 같았겠지. 그 부모님들이 비싼 세금내서 보석 같은 요놈들을 내게 보내셨다.
내게는 아이들의 몸짓 하나, 말 한 마디, 글 한 토막을 소중히 다룰 의무가 있다. 그래서 아이들의 언어와 시간들을 기록하기로 했다. 워드프로세서로 타이핑하기에는 말 뽄새와 감각이 너무 세서 붓으로 그리기로 했다(감히 서예도 못하는 주제에 쓴다는 표현을 사용하면 불손한 듯해 그린다는 단어를 골랐다).
캘리그라피를 배운 적 없고, 잘 하지도 못하고, 기본도 없다. 야매로 닥치는 대로 아무 재료나 가지고 단원평가 이면지에 써가면서 한다. 준비물은 귀와 눈이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도구로 아이들을 기억하고 싶다. '야매캘리'는 현재까지 진행형이다. 앞으로도 쭉 그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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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미래의창 2024>, <선생님의 보글보글, 산지니 2021> 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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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 못 하는 선생님, '캘리그라피' 하는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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