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달력.
김종성
육십갑자의 33번째인 병신년(丙申年)은 어감은 좋지 않지만 우리 역사에서 중대한 일이 많이 벌어진 해다. 그래서 꽤 '삼삼'한 해였다.
서기 원년 이후에 최초의 병신년은 서기 36년이다. 그 이후로 총 33차례의 병신년이 있었다. 금년은 34번째 병신년이다. 그간의 병신년에는 대외관계와 관련하여 민족의 운명에 득이 되는 사건이 많았다. 물론 그렇지 않은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보면 득이 될 때가 많았다.
참고로, 육십갑자에 기초한 연도는 음력 설날부터 시작하는 게 원칙이다. 이에 따르면, 금년 병신년은 음력 설날인 2월 8일에 시작한다. 하지만, 요즘은 육십갑자 상의 연도를 양력 1월 1일부터 계산하는 분위기가 상당히 굳어져 있다. 이런 분위기를 감안하면, 올해 병신년은 1월 1일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도 있고 2월 8일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도 있다.
발해 건국, 고려 통일... 역사상의 굵직한 사건 많았던 병신년 병신년에 벌어진 사건 중에 대외관계와 관련된 게 많다고 했지만, 꼭 그런 사건만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사회통합이나 정권의 향방과 관련된 사건도 있었다. 고려 시대인 1176년에는 천민인 망이·망소이가 지금의 충남 공주에 소재한 명학소에서 반체제 반란을 일으켰다. 신분해방을 목표로 고려를 깨고자 했던 기층민중의 이 반란은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반역 사건으로 처리되었다.
조선 후기인 1716년에는 다수세력인 서인당 출신의 노론당이 최초의 단독적인 정권 장악에 성공했다(병신처분(丙申處分)). 노론당은 1722년 정권을 내줬다가 1725년 다시 탈환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장기집권했다. 이들의 장기집권이 조선왕조 멸망에 기여한 측면도 적지 않았다.
대한민국 시대인 1956년에는 사사오입 개헌(1954년)에 의한 대통령선거가 치러졌다. 사사오입 개헌의 목적은 이승만 대통령에 한해 3선 제한을 없애고 무제한 입후보를 가능케 하는 데 있었다. 국회 재적 의원 203명의 3분의 2인 136명이 찬성해야 개헌안이 통과될 수 있는데, 135명만 찬성하는 바람에 부결이 선포됐다. 그런데도 집권 자유당은 '203의 3분의 2는 135.3이니 소수점 이하 3을 없앤 135를 의결정족수로 보아야 한다'면서 부결 선언을 취소하고 가결을 선포했다.
이 사사오입 개헌에 의한 대통령선거가 치러진 해가 1956년 병신년이다. 이승만에게 위협적인 민주당 신익희 후보가 선거 직전 급사하고 나서 치러진 선거에서, 대통령에는 자유당 이승만이 당선되고 부통령에는 민주당 장면이 당선되었다.
이렇게 병신년은 국내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해였지만, 국제 정치적으로는 훨씬 더 중요한 해였다. 굵직한 것만 예로 들면, 696년을 들 수 있다. 이때는 고구려가 사라진 지 28년 뒤였다. 이 해에 대조영은 당나라 땅 영주에서 거란족·말갈족과 함께 영주 민란을 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당나라를 약화시킨 그는 698년 '고구려 II' 발해를 건국했다.
696년 이후로 네 번째 병신년인 936년에는 훨씬 더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수십 년간의 '민족분단'을 해소하고 고려 왕건이 진정한 의미의 삼국 통일을 달성했다. 668년에 있었던 신라의 통일은 불완전한 것이었지만, 936년에 왕건은 상대적으로 완전한 통일을 이뤄냈다.
'상대적'이란 표현을 쓴 것은, 탐라 같은 나라는 여전히 독립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육지 위주의 역사관에 빠져 있는 우리는 탐라 같은 섬나라를 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탐라는 때로는 제주를 벗어나 전라도 일부까지 영유했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해상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바다의 강자였다. 그런 탐라까지는 통일하지 못했지만, 왕건은 한반도의 육지 영역에서 '상대적으로 완전한' 통일을 이루어내는 데 성공했다.
종묘 소실, 아관파천... 병신년의 굴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