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 혼자사는 집에 불, 솟아날 구멍은 있었다

[서울'혁신'시, 무엇이 달라졌나 ⑩] 저소득층 화재복구 지원

등록 2016.01.11 07:20수정 2016.01.27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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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크리스마스날 화재로 타버린 서울 구로구 고척동 유아무개양의 집.
2013년 크리스마스날 화재로 타버린 서울 구로구 고척동 유아무개양의 집. 서울사회복지협의회제공

크리스마스날 밤에 일어난 화재, 막막했지만...

지난 2013년 12월 25일 오후 11시가 넘은 시각, 서울 구로구 고척동의 한 빌라 지하층에서 불이 났다.  

이 집에 혼자 살던 유아무개(당시 고1, 16세)양이 크리스마스를 맞아 찾아온 언니와 함께 잠깐 외출한 사이에 벌어진 일. 유양이 지하방에서 나는 잡내를 없애기 위해 촛불을 켜놓고 나온 게 화근이었다.

불은 가까운 소방서에서 나온 소방관들에 의해 금방 꺼졌지만, 옷 몇 벌을 제외하고 침대, 책상, 컴퓨터, 싱크대, 책가방, 책 등이 완전히 타버렸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 25만 원의 집에서 어머니와 둘이 살다가 어머니마저 한 달 전 돌아가셔서 혼자가 된 유양은 언니에게 생활비를 지원받아 어렵게 살던 형편이어서 망연자실했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는 법. 갈 곳 없는 유양이 이모집에 잠시 옮겨 살고 있는 동안 이 집에 '산타'가 다녀간 것이다.

한 달 후 돌아간 집에는 도배, 장판이 말끔히 돼있는 것은 물론 침대, 책상, 각종 생활용품들이 새롭게 구비돼 있었다. 게다가 집주인과는 3년 계약까지 맺어 향후 집 걱정까지 덜게 됐다.


지난해 8월 25일 낮 성동구 사근동 주택가에서는 전기방석에 연결된 전기 배선 문제로 화재가 났다.

하지기능 장애인으로 파지를 주워 생활하는 피해자 최아무개(여, 76)씨는 성동복지관에서 1주일에 두 번 도시락을 받아 끼니를 해결하는 어려운 처지였다.


불이 크지는 않았지만 가재도구를 다 태우고 집 내부가 다 그을려 살 길이 막막했다.

그러나 등에 '전문봉사단'이라고 적힌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방문해, 장판·도배는 물론 냉장고, 전자레인지까지 들여놔줘 한시름을 놓게 됐다.

 집수리봉사단 단원이 불에 타버린 집을 수리하고 있다.
집수리봉사단 단원이 불에 타버린 집을 수리하고 있다.서울사회복지협의회제공

불이 난 집에 찾아온 '산타'는 누구?

"화재현장을 나가보면 언제나 피해자들은 어렵게 사는 분들입니다. 돈이 있으면 보험이라도 들어놨겠지만 그분들 대부분은 그렇지 않죠. 이런 분들이 삶의 의욕을 잃고 망연자실한 모습을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현장에서 화재 원인의 사후분석을 맡고 있는 김태석 서울소방재난본부 현장대응단 화재조사관의 말이다.

이같은 딱한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소방재난본부 직원들이 모은 '119사랑기금' 9800여만 원을 서울시사회복지협의회에 기부해 피해자들을 돕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8년. 반응이 좋자, 2년 후인 2010년부터는 소방재난본부, 서울시사회복지협의회, 에쓰-오일이 함께 3자협약을 맺었다.

그렇게 시작된 게 '저소득층 화재복구 지원 사업'이다. 소방재난본부는 도움이 절실한 피해자들을 가려내 추천하고, 사회복지협의회는 산하 '집수리봉사단'을 활용해 집을 고쳐주고, 정유회사인 에쓰-오일은 소요되는 기금을 대는 방식이다.

현장과 가장 가까운 소방본부가 피해자 가운데 기초생활수급자, 홀몸노인, 장애인세대, 한부모가구 등 생활이 어려운 가정을 선별해 3자로 구성된 심의위에 추천하면 심의위는 1인당 최고 700만 원 한도 내에서 지원을 결정한다.

일단 지원이 결정되면, 소방본부는 의용소방대 등을 동원해 화재 폐기물을 처리한다. 사회복지협의회는 인테리어, 도배, 장판, 전기시설 등 전문사업가들로 구성된 '집수리봉사단'을 가동해 불에 탄 집을 말끔히 수리한다.

 2년전 화재사고를 당한 유아무개양이 말끔히 복구된 방에 들어서고 있다.
2년전 화재사고를 당한 유아무개양이 말끔히 복구된 방에 들어서고 있다.서울사회복지협의회제공

화재 나기 전보다 더 살기 좋게...

사회복지협의회 윤연옥 부장은 "집수리봉사단에 참여하고 있는 분들은 모두 해당 분야에서 20~30년 이상 일한 베테랑들"이라며 "화재가 나기 전보다 훨씬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존경심이 우러날 정도"라고 말했다.

수리가 완료되면 침대, 책상, 소화기 등 생활집기에서부터 TV, 컴퓨터 등 가전제품, 이불, 쌀 등 생필품까지 피해자들의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지원한다.

지금까지 혜택을 받은 피해가정은 모두 75세대. 4억 3천여만 원이 소요됐다. 비용은 평소 화재사고 예방에 관심이 많은 에쓰-오일이 7년째 부담해오고 있다. 

김태석 조사관은 "피해자가 고쳐준 집에서 오래 살 수 있도록 집주인과는 3년이상 거주를 조건으로 계약을 맺는다"며 "예상치 못한 지원에 고마워하는 분들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 "간혹 지원대상이 아닌 분들한테서 '우리 집도 지원받을 수 있냐'는 문의를 받지만, 기본적으로 생활이 어려운 분들을 대상으로 한 사업임을 이해해달라며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2년 전 불의의 화재를 당했다 도움을 받은 유양은 "당시 눈앞이 캄캄했었지만 여러 분들의 도움 덕에 크게 부족하지 않게 살 수 있었다"며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어떡할 뻔했냐"고 고마워했다. 유양은 올해 대학에 합격했다.
#화재 #집수리봉사단 #화재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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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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