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 내려다본 장수마을의 모습장수마을은 근현대 저층 주거지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정대희
"재개발이 원주민들을 외부로 나가게 만든다는 문제의식이 있었어요. 이왕이면 오랫동안 살았던 주민들의 공동체를 깨지 않고 대안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마을의 모형이 무엇일까 고민하기 시작했지요."
주민자치모임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동안 부녀회를 비롯해 마을의 자생적인 조직이 단 하나도 없었다. 의기양양하게 시작했지만, 쉽지 않았다. 사람이 모이니 작은 다툼이 일어나고 조직이 무너질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활동을 이어갔다.
2011년엔 마을 실태조사를 벌였다. '마을주민 5명이 모이면 골목이 바뀐다'는 모토로 시작한 일이다. 어르신들에게 '마을의 불편한 점을 찾고 이웃 5명의 동의를 받아오면, 문제점을 고쳐주겠다'고 제안했다. 반신반의하던 주민들이 수첩 종이에 지장을 찍어 동의서를 받아왔다. 이를 바탕으로 구청과 협의해 마을 환경을 정비했다. 가파른 골목길에 난간이 생긴 것도, 낡은 계단을 정비한 것도 이 과정을 통해서였다.
"뭔가 좀 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러면서 모임을 반장이나 통장 체계가 아니라 '골목통신원' 체계로 만들었어요. 마을의 6개 골목에 한분씩, 매주 골목 소식을 전하는 식으로요. 이렇게 주민들과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했지요."'언젠가 곧 떠날 마을'이라는 무관심이 '내가 발붙이고 살아갈 마을'이라는 생각으로 바뀌면서, 주민들은 공간을 가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수마을 주민의 상당수는 65세 이상 노인. 노후한 집을 고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직접 수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외부업체에 맡기기엔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컸다. 2011년, 미장 기술이 있는 마을 주민 몇 명을 고용해 '동네 목수'라는 이름의 마을 기업을 본격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재개발 될 날만 기다리며 '빨리 이사 갔으면 좋겠다'고 말하던 주민들이 빈집이 마을 카페나 공방으로 리모델링되는 모습을 보면서 재개발이 어렵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후 '불편하게 사는 것보다 집을 고쳐야겠다'고 마음을 바꿔먹게 된 거지요."또 동네 목수는 단순히 집수리를 돕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행정과 주민들 간의 가교 역할을 했다. 행정이 개입 하지 않았는데도 마을 만들기 활동을 해온 장수마을은 2013년 4월, 주민들의 동의 50% 이상을 얻어 재개발 예정구역 해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