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배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 2003년 6월 10일 의원총회에서 '등신외교'발언에 대해 사과발언을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이종호
하지만 귀국한 대통령을 기다라고 있던 것은 보수 언론과 정치인의 냉대뿐이었다. <조선일보>는 '몰매 맞는 '빈손외교'', '거품외교', '화려한 '형식'… 남루한 '성과''로 혹평했다.
이 신문이 이후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해외 순방시 얼마나 극진한 대접을 받았는지를 강조한 것과는 뚜렷이 대비되는 보도였다.
<동아일보>는 '노 대통령의 '대북 진심'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사설을 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신문은 "북한을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오히려 더 위험하다"는 말을 문제 삼으며 그 "위험한 발언"의 진의가 무엇이었냐고 캐물으며 비난했다.
하지만 진정한 '스타'는 따로 준비되어 있었다. 당시 한나라당(지금 새누리당) 이상배 정책위 의장은 국회최고위원회의에서 "노 대통령이 국빈대우를 받은 것 빼곤 이번 방일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운을 뗀 뒤, 이런 악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노 대통령의 이번 방일 외교는 한국 외교사의 치욕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고, '등신외교'의 표상으로 기록될 것이다."박근혜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사뭇 다른 길을 갔다. 첫째, 한 명은 무슨 일을 해도 욕을 먹은 반면, 다른 한 명은 무슨 일을 해도 (혹은 아무 일 안 해도) 별탈 없이 넘어갔다. 여기에 두 사람이 일본을 다루는 방식 또한 '상극'이라 할 만큼 달랐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첫날부터 총리를 만났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3년이 다 되어서야 첫 한일 정상회담 자리를 마련했다. 차이는 시기나 횟수만이 아니었다.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전략적인 이해관계를 추구했던 노무현과 달리, 박 대통령은 임기 3분의 2를 '외면'으로 일관하다가 별안간 일본을 끌어안는 기묘한 행태를 보였다.
영어권에서 두루 쓰이는 말로 '외교적(diplomatic)'이라는 형용사가 있다. 겉으로는 상대의 체면을 살려주면서도 뒤로는 이익을 취하는 행동을 일컫는 말이다. 항상 좋은 의미로 쓰이지는 않으나, 살벌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국제사회에서 활동하는 지도자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기교이기도 하다. 세련미, 빠른 계산, 뻔한 듯하면서도 듣기 좋은 언어 등이 외교행위의 핵심 자질이 된다.
그런 면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년간 벌여온 외교는 '외교'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특히 한국이 핵심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주변 강대국과의 외교는 '전략'은 커녕, 어떤 원칙이나 일관성도 찾을 수 없는 '널뛰기' 그 자체였다. 그 결과 터진 것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고 못박은 '위안부 한일 합의'다.
'널뛰기' 외교의 예견된 파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