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사친구가 새로 발생되는 불량품을 처리하는 동안 나는 묵은 '꼴통' 불량품들을 처리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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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함께 수리사 업무를 한 지 몇 개월이 지났다. 이제 친구도 어엿한 수리사가 돼 왠만한 불량품은 혼자서도 수리를 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생산 라인에서는 '수리사가 팽팽 놀아야 그 라인은 잘 돌아가는 라인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불량이 나오지 않고 원활하게 생산활동이 이뤄진다는 뜻이다.
처음 친구를 수리사로 차출하기전에는 나 혼자 하루종일 눈코뜰새 없이 바빴다. 현장 곳곳에는 여러 가지 불량품들이 팔레트(물건을 한번에 여러 대 올려 옮길 수 있도록 나무나 플라스틱을 이용해 만든 판)위에 가득 쌓여 있었고 그 불량품들을 열심히 수리해서 라인으로 재투입했지만 또 다른 불량품이 나오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친구가 수리사가 되고 함께 일을 하면서 생산 라인은 점점 안정이 돼갔다. 새로 발생되는 불량품들 중 간단한 불량품은 친구가 혼자 수리를 해서 재투입시켰다. 그동안 나는 현장 여기저기 쌓여있던 묵은 불량품들을 처리해 나갔다. 어쩌다 친구가 혼자서 해결하지 못하는 '꼴통' 불량이 나오면 추가로 한두 대씩 쌓이기도 했지만 쌓여가는 속도보다 수리해서 재투입하는 속도가 빨라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묵은 불량품들을 모두 정리하고 이제는 계속 동일 불량을 발생시키는 공정을 찾아 개선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제품 기능불량의 경우 PCB 문제로 발생될 확률이 9할 이상이었으므로 불량이 발생되면 불량 원인을 찾아낸 뒤 우리 회사에 함께 있는 PCB 수삽공정으로 가서 현황을 실시간으로 피드백해 추가로 동일 불량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 가장 기본이 되는 활동이었다.
TV 메인보드에 조그만 부품들을 삽입하는 '자삽' 공정을 거친 뒤 우리 회사로 납품되면 수삽 공정에서는 덩치가 큰 부품들을 작업자들이 직접 손으로 삽입하고 자동 납땜기로 납땜 작업을 한다. 조립이 완료된 PCB는 검사용 JIG(지그-PCB의 기능검사를 하기 위해 만든 장비)에 실장하여 동작 검사를 한뒤 완제품 조립 라인으로 보내진다. 그런데도 간혹 납땜 불량이나 간헐적 동작 불량의 경우엔 검출이 되지 않은 채로 넘어오기도 한다.
우리 회사는 TV 임가공 업체다. 그렇기 때문에 TV 생산 댓수로 단가를 곱하면 회사의 매출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더 많은 TV를 생산하면 원가가 줄어들기 때문에 손익은 증가한다.
생산 도중에 불량품 1대가 빠지게 되면 최소 3대 이상의 손실이 발생되는 격이다. 불량품이 빠져서 바로 완성이 안 되기 때문에 추가로 1대를 더 투입해야 하고 수리가 완료되면 뒤에 생산되던 제품들을 대기 시킨 상태로 재투입을 해야 한다. 그로 인해 발생되는 생산 라인의 로스(Loss)는 3대 이상인 셈이다. 그런 불량품이 수십 대씩 발생해서 현장 곳곳에 가득 쌓일 정도였으니 회사로써는 엄청난 손실을 보고 있는 상태였다.
불량이 몇 대가 발생이 되든 출하되는 제품의 양은 납기일 내 맞춰야 했으므로 회사는 불필요한 인건비를 1.5배로 들여가면서 작업자들에게 특근과 야근을 시켜야 했다. 그만큼 생산 라인의 연속성은 중요한것이고 불량품 1대가 덜 발생되도록 하는 활동은 생각보다 훨씬 더 중요한 활동이었다.
처음 수리사가 된 친구에게 그런 논리를 머릿속에 심어주고 '마인드셋'을 시키는 것이 불량난 제품을 수리하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처음부터 시간만 가기를 기다리는 현장 작업자로 이 일을 시작해서 그런지 '주인 의식'이 조금은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교육을 시켰고 그 친구도 이내 '진짜' 수리사가 되어갔다.
수리사로 탄탄한 내공을 쌓은 뒤 다시 QC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