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C출하검사원들의 담당업무는 생산 라인에서 만들어지는 제품을 롯트별로 샘플링 검사를 해 전체 롯트의 품질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pixabay
생산 라인의 꽃이라고 불리는 직무인 '수리사'를 친구에게 넘겨주고 나는 다시 QC(품질관리)가 되었다. 보통 QC라고 하면 회사로 납품되는 부품들의 품질을 관리하는 '수입검사'와 생산 라인을 거쳐 출하되는 완제품의 품질을 관리하는 '출하검사' 2개의 파트로 나뉜다. 하지만 우리 회사는 프린터 사업부가 없어지면서 많은 인력이 감원되었고 QC부서도 '출하검사' 파트만 남아 있었다.
출하검사실에는 품질관리 부서의 수장이었던 안 과장님과 산업기능요원으로 구성된 2명의 검사원이 함께 근무를 했다. 내가 수리사로 근무할 때 출하검사실에서 근무하던 2명의 검사원 중 1명의 산업기능요원이 복무만료 됐고, 회사에 새로 생긴 '유통사업부'로 자리를 옮기면서 그 빈자리에 내가 들어가게 되었다.
나와 함께 근무하게 된 사람은 나보다 1살이 더 많은 형이었다. 그 형은 학창시절 테니스와 비슷한 운동인 '정구'를 하던 체육특기생이었다. 하지만 정구를 그만두게 되었고 군대에 갈 때가 되어 우리 회사에 산업기능요원으로 취직을 했다고 한다. 원래 프린트 사업부의 출하검사실에서 근무를 하다가 프린트 사업부가 없어지면서 TV 출하검사실로 자리를 옮겨 근무를 하고 있었다.
출하검사실에서 검사원들의 담당 업무는 완제품의 '품질관리'다. 생산 라인에서는 하루에도 몇개의 다른 모델들이 생산이 되는데 모델 변경이 되지 않고 한번에 연속적으로 한가지 모델이 생산되는 단위를 '롯트(Lot)'라고 한다. 그 롯트 수량을 기준으로 'AQL(Acceptantce Quality Level - 합격 품질 수준)' 을 적용한 샘플링 검사를 진행해 전체 롯트에 대한 품질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관리하는 업무를 한다.
당시 우리 회사는 롯트 수량이 500기준 20대의 제품을 샘플링하여 검사를 진행해야 했다. 하지만 검사원 두명이서 그 만큼의 샘플링 검사를 진행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생산 라인에서 500대를 생산하는데 평균 약 2시간이 소요되는데, 그중 20대의 제품을 검사실로 가져와서 포장을 뜯고 외관검사·기능검사·에이징검사 등을 진행하고 출하검사 성적서까지 작성을 한다는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회사에서 생산 되고 있는 TV 모델의 경우 다섯 가지가 넘지 않았다. 그리고 모두 내수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생산 도중에 큰 문제가 없는 한 출하된 제품에서도 그리 큰 문제가 발생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500대 중 약 2~4대의 제품만 샘플링 검사를 하고 검사성적서만 20대의 샘플링으로 기록했다.
이렇게 검사 기준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었고 품질관리 수장이었던 과장님도 샘플링 수량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을 하지 않으셨다. 가끔 회사에 ISO 심사 같은 이벤트가 있어서 평소에 만들어 놓지 않았던 문서들을 몰아서 만들어야 할 때는 단 1대의 샘플링 검사도 하지 않고 출하되는 롯트도 있었다.
생산 라인에서는 자체적인 검사 공정이 있고 그 기준에 맞게 만들어진 제품만 완제품으로 출하된다. 그렇기 때문에 출하검사를 거치지 않고 바로 시장에 나간다고 해서 특별한 품질문제가 발생될 확률은 아주 낮았다. 그래도 출하검사를 하는 이유는 제품이나 부품이 법률적인 '안전 규격'에 맞게 생산이 되었는지, 혹은 생산 라인에서 검출이 되지 않는 롯트성 불량(동일한 불량이 해당 생산회차에 여러대 발생하는 것)이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는 것이다.
이렇게 QC라고 하는 직무는 편하려고 하면 한 없이 편하게 할수도 있고 힘들게 일하려면 한 없이 힘들게 일할 수도 있는 직무다. 그 사이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요령껏' 일을 하는 것이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서 QC 직무를 맡고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반면 각 직무마다 고유의 담당자가 있는 대기업에서의 QC는 아주 '힘이 쎈' 직무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이렇듯 회사의 특성에 따라 QC는 아주 힘이 쎈 직무이기도하고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그저그런 직무이기도 하다.
거의 1년만에 다시 QC가 되어 출하검사원으로 근무를 하게 되었을 때는 아주 열심히 일을 했다. 힘들지만 샘플링 숫자도 기준에 맞게 지키려고 노력했고 수리사로 익힌 제품의 특성을 이용해 불량이 자주 발생되는 부분을 중점적으로 검사해서 혹시라도 생산 라인에서 검출되지 않은 불량품이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나의 업무를 열심히 하려는 내 의도와 상관없이 나의 이 '열심히'는 회사를 가끔 시끄럽게 만들었다. 검사도중 발견된 불량품, 품질관리 메뉴얼에 따르면 '전체 롯트를 다시 열어 불량품이 추가로 발생이 되는지 안되는지 재확인을 한 뒤 출하를 해야한다.'고 되어 있지만 그 기준은 책에 나오는 기준일 뿐 '시간=돈' 인 중소 임가공 업체에서는 '재작업'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불량품이 발생해 생산팀 관리자분들께 피드백을 하고 품질관리 수장이었던 안 과장님께 보고를 드리면 결국 생산 물량을 맞추기 위해 재작업 할 시간이 없으니 'QC에서 직접 그 롯트의 제품을 전수검사 하라'거나 '불량품이 더 나올것 같지 않으니 그냥 출하하라'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몇 차례 그런 지시를 받고나니 그동안 열심히 일해온 보람이 모조리 사라졌다.
다시 QC가 되면서 타오르던 내 열정이 조금씩 식어갈 때쯤 나보다 먼저 이 출하검사실을 거쳐간 검사원들이 왜 그리도 열정이 없어 보였는지 이해가 됐다. 열심히 해봐야 결국 일만 더 만드는것이라는걸 깨달았던 것이다. 그렇게 나도 그들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직장생활 3년만에 처음으로 생긴 나만의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