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시골집에 아이들을 두고 혼자 바깥일을 보러 나가면, 큰아이는 '그림편지'를 쓰면서 그리운 마음을 나타냅니다. 나도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아이한테 들려줄 편지를 작은 종이에 쓰고요.
최종규
<사랑하는 안드레아>를 쓴 어머니는 아이한테 "엄마는 거룩한 사람(깨어난 사람/슬기로운 사람)이 아니"라고도 말합니다. 참말 그러하겠지요. 그러나, 어느 모로 본다면 어머니가 안 거룩하거나 안 깨어나거나 안 슬기로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아이를 낳아 돌보는 동안 '새롭게 어른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지식이나 정보로 가르칠 수 없는 줄 깨닫는 어버이는 누구나 '슬기로운 숨결'로 거듭나요. 아이를 오직 사랑으로 가르치고 보살피며 어루만질 수 있을 때에 즐거운 삶이 되는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어버이는 모두 '아름다운 넋'으로 거듭나요.
우리 집 아이들이 설거지를 하는 손길은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이웃을 곱게 안고 포근히 아낄 수 있는 손길은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습니다. 그러면, 우리 아이들한테 어버이인 나는 '거룩한 사람'일까요? 네, 나는 거룩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나는 거룩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구태여 거룩하고 훌륭하고 이러하고 저러하고 하는 이름을 떠나서, 어른으로 기쁘게 서고 어버이로 즐겁게 서며 사람으로 기쁘게 설 수 있는 숨결입니다. 아이가 배울 만한 몸짓을 스스로 지으면서 날마다 새롭게 노래하는 넋입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나는 우리 어버이한테서 삶을 물려받습니다. 나를 낳은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삶을 물려받지요. 내가 오늘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있는 삶이나 사랑이란 언제나 우리 어버이가 나한테 베푼 삶이요 사랑입니다.
형은 반년 동안 사귄 친구들이 유럽 학생들뿐이고 본토 학생은 거의 없다면서, 그 이유가 언어와 문화의 차이가 초래한 장벽 때문이라고 했잖아. 하지만 내가 경험하고 느낀 바로는, 진짜 중요한 건 돈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 홍콩에서 2년을 살면서도 나는 공공주택에 사는 사람은 한 명도 사귀지 못했어. (178쪽)집을 나서기 전 미국과 유럽에서 온 교환학생 친구들에게 시위행진에 참여하지 않겠느냐고 물어봤어요. 다들 기말시험 준비 때문에 안 간다고 하더라고요. (186쪽)나는 나로서 오롯이 서는 사람입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로서 오롯이 서는 사람입니다. 나는 나다우면서 아름답고 아이는 아이다우면서 아름답습니다. 내 곁에 있는 이웃은 이녁대로 아름다우며, 이웃이 낳아 돌본 아이는 그 아이대로 아름답습니다. 저마다 다르면서 아름답고, 저마다 다르게 슬기롭습니다. 저마다 다르면서 사랑스럽고, 저마다 다르게 기쁜 노래를 불러요.
아침저녁으로 마당에서 아이들하고 손을 맞잡으면서 춤을 춥니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마당에서 짓는 춤놀이는 똑같습니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마당에서 구슬땀을 흘리면서 놀고, 여름에도 겨울에도 밤마다 흐드러지는 별빛을 잔치처럼 누립니다.
이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서 줄 수 있어서 반갑습니다. 이 아이들이 맛나게 밥을 먹어 주니 고맙습니다. 이 아이들이 내 노래를 즐겁게 들어 주니 재미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저희 나름대로 새롭게 노래를 지어서 불러 주니 싱그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