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어릴 적에 무엇을 보고 누리고 자랄 적에 '자립하는, 자급자족하는, 스스로 서는 씩씩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며, 우리 집 아이들은 시골에서 학교를 안 보냅니다.
최종규
(스페인에서) 네브리하의 바람은 훗날 교회가 쓴 금지의 방법보다 훨씬 근본적인 차원에서 인쇄물을 통제하는 것이었다. 그는 민중의 토박이말을 문법학자의 언어로 대체하고 싶어 했다. 이 인문주의자가 제안한 것은 구어를 표준화함으로써 인쇄라는 신기술을 토박이 영역으로부터 빼앗아버리는 것이었다. (73쪽)네브리하가 문법을 가르치려고 한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읽기를 배우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가 여왕에게 권력과 권위를 달라고 청원한 이유는 자신의 문법을 이용해 읽기의 무정부적 확산을 가로막기 위해서였다 … 그의 계획이란 제국의 동반자를 침착하게 제국의 노예로 바꾸는 것이었다 … 토박이말로부터 가르치는 언어로의 근본적인 변화는 모유에서 분유로, 자급자족에서 복지로, 사용가치를 위한 생산에서 시장가치를 위한 생산으로의 전환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78, 79, 80쪽)이반 일리치 님은 스페인 이야기를 불쑥 꺼냅니다. 에스파냐 어느 지식인이 '스페인 곳곳에서 사람들이 저마다 쓰던 고장말(사투리)'을 더는 못 쓰게 하면서 '표준 스페인말(국가 통제 표준말)'만 쓰도록 할 때에, 에스파냐 사람들(민중)은 '여왕 폐하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는 노예로 부릴' 수 있다고 외칩니다.
중앙집권 권력을 이루고, 왕권을 더욱 튼튼히 다질 뿐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삶을 짓는 길을 가로막는 가장 놀라우면서 가장 무시무시한 일이란 바로 '국가 표준말'을 세워서, 사람들이 '국가 표준말'로만 '의사소통'을 하도록 시키는 데에 있다고 외쳤다고 합니다.
아마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가 뚱딴지 같다고 여길 만하리라 봅니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에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무릎을 칠 만하리라 봅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그림자 노동>에서 잘 들려주는 이야기인데, 아주 먼 아스라한 옛날부터 '말'은 '여느 집'에서 '어머니하고 아버지'가 아이한테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말을 가르친다면서 나라에서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부어 학교를 짓거나 교사를 키우거나 교과서를 엮을 까닭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말을 비롯해서 집을 짓고 밥을 지으며 옷을 짓는 살림살이는 모든 마을 모든 집에서 스스로 가르치고 배우던, 돈으로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고 스스로 물려주고 물려받은 아름다운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는 정해진 대로 말하는 법을 배운다. 가난뱅이가 부자처럼 말하고, 환자가 건강한 사람처럼 말하며, 소수가 다수처럼 말하도록 하는 데 돈이 쓰인다. 우리는 아이와 교사의 언어를 개선하고 교정하고 확장하고 갱신하는 데 비용을 지출한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전문용어에는 더 많은 돈을 쓰고, 고등학교에서 십대들이 이 용어를 맛보도록 하는 데는 더더욱 많은 돈을 쓴다. (112쪽)이 부부는 자녀 앞에서까지 '인 로코 마기스트리' 즉 '교사의 입장에' 서 있었다. 아이들은 부모 없이 자라는 셈이었다. 두 어른은 아들 둘과 딸 하나를 향해 말끝마다 '교육'을 했다. 저녁식사 자리에서도 끊임없이 자녀들에게 말하는 본보기를 보였고, 내게도 그리 해 달라고 부탁했다. (130∼131쪽)아이한테 말(을 비롯해서 온갖 지식)을 가르칠 적에 학교에 보내는 일이 '사람 역사'에서 대단히 짧습니다. 게다가 아이한테 말을 가르친 어버이는 말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말을 가르친 어버이는 아이가 스스로 삶을 짓는 길을 모두 가르쳤어요. 여느 보금자리인 집에서 어버이한테서 말을 배운 아이들은 누구나 손수 집을 짓고 밥을 지으며 옷을 짓는 살림을 몽땅 배웠지요.
한국 사회를 돌아보아도 이 대목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한겨레는 조선 봉건 사회일 적에도 일제강점기 사회에서도 분단이 되고 전쟁이 터지던 때에도, 시골에서 여느 마을 수수한 보금자리에서 아이를 낳아 돌보던 모든 어버이는 이녁 아이한테 '말을 바탕으로 집짓기·밥짓기·옷짓기'를 가르치고 물려주었습니다.
학교 문턱을 밟은 적이 없는 시골마을 수수한 어버이입니다만, 책 한 권조차 읽은 적이 없는 시골마을 투박한 어버이입니다만, 쓰레기 하나 내놓지 않으면서 '손수 삶을 지어서 삶을 누리는 길(완전한 자급자족)'로 살림을 빚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