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우스의 후니상일본에 좀 더 많은 씨앗을 뿌리시길.
이희동
후니상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첫 번째 드는 감정은 '부러움'이었다. 왜 우리 사회의 노인들은 후니상과 같은 일을 하지 못하고, 사회는 그들의 풍부한 경험을 살리지 못하는 것일까? 현재 우리 언론에 가장 많이 노출되는 저 연배의 평범한 노인들은 대개가 '어버이연합' 같이 부정적인 이미지가 아니던가.
사실 일본이나 한국의 70세 이상 노인이라면 각 개인이 모두 대하 역사드라마를 쓸 수 있을 만큼의 극적인 삶의 경험을 가졌다.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 전후 복구와 급격한 산업화 등 격동의 시기를 살아오면서 그들은 숱한 위기를 극복해왔고, 그 결과 현재의 한국과 일본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 사회에는 저런 후니상과 같은 어른들이 눈에 자주 보이지 않는다. 지도층에 앉은 노인들은 권력을 탐하느라 국민과의 소통은 포기한 지 오래이며, 평범한 노인들은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으며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다. 물론 말이야 '초고령 사회' 운운 하면서 그들과의 소통을 이야기하지만 막상 그들이 말을 걸면 젊은 세대들은 자리를 회피하고 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부끄러워졌다. 혹시 나부터 후니상 같은 어르신들과 소통할 생각이 없었던 게 아닐까? 하루하우스에는 그날 몇 명의 청년들이 함께 일하고 있었는데 과연 난 그들처럼 70세 넘은 어르신을 나의 동료로 인정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어르신들이 현재의 권력으로부터 쉽사리 동원 당하는 것은 어쩌면 지금 정부만큼 그들에게 말을 걸어준 이들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현 정권이 추종해 마지않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은 어쨌든 그들이 가장 잘 나가던 시기로서 국가가 국민을 끊임없이 호명하던 때가 아니던가. 사람이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존재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 사회는 후니상과 같은 노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지 못하는 것일까? 단순히 젊은이들의 노인 공경심이 없기 때문일까?
마을공동체의 주체가 된 노인을 보고 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