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페이지 제작회사는 새로생긴 유통사업부의 홈페이지 제작비용 조차도 아끼기 위해 산업기능요원들중 작업이 가능한 인력을 차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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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프린터 생산 업무가 중단되고 매출과 직원수가 절반으로 줄었다. 전무님은 사장님과의 권력 싸움에서 승기를 잡은 듯했고 회사에는 전무님 직속의 '유통사업부'가 생겼다. 유통사업부는 중국 저가 제품을 국내로 들여와 홈쇼핑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판매해 수익을 얻는, '무역' 업무를 하는 곳이었다.
중국에서 주력으로 수입해온 품목으로는 '미니스쿠터' '홈시어터' '차량용 냉온장고' '어린이 장난감' 등이 있었다. 그 제품들을 소비자에게 판매를 하는 채널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때까지 우리 회사는 '홈페이지' 하나 가지고 있지 않은 회사였다. 대기업 제품을 하청 받아 임가공 생산만을 해오던 회사였기 때문에 홈페이지를 통해 고객을 만나거나 회사를 홍보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회사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면서 준비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유통사업부에 근무할 인력도 구성을 해야 하고 홈페이지를 만들어 인터넷 쇼핑몰도 만들어야 했다. 보통의 경우 쇼핑몰을 구축하려면 외부에서 전문가를 영업하거나 외주 제작을 맡기는 게 일반적인데 회사는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내부 직원들 중에서 그런 능력을 가진 직원들을 차출해서 이용했다.
유통사업부가 생기고 산업기능요원들 중에 유통사업부에서 근무할 인력을 뽑는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유통사업부로 부서를 옮기면 사무실에 자리도 생기고 현장에서 하루종일 서서 같은 동작을 무한 반복해야 하는 작업자 신세를 탈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많이들 가고 싶어했다.
유통사업부 인력 구성이 시작되고 먼저 내게 제의가 들어왔다. 처음 입사할 때부터 나를 좋게 봐줬던 관리팀 누나가 유통사업부로 자리를 옮기는데 나도 추천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자재팀에서 생산팀으로 자리를 옮긴지 몇 달 되지 않았고 수리사가 없어 힘들어 하던 생산팀에 이제 어엿한 수리사가 생겨 좋아하던 대리님과 주임님이 기를 쓰고 반대했다.
나도 새로운 일에 대한 호기심에 '자리를 옮겨달라고 할까' 하고 생각했지만 내가 지금껏 걸어온 길을 계속 가보자는 생각에 이내 마음을 접고 수리사 업무에 충실하기로 했다. 그래도 회사에서 새로운 사업을 하는데 핵심인재로 내가 지목됐다고 하니 기분이 좋았다.
부산에서 온 친구와 같은 대학에 다니고 있던 형이 병역특례를 받기 위해 우리 회사에 함께 취업했다. 아무래도 친구가 중간에 있다보니 그 형과도 우리는 금새 가까워졌다. 그 형의 전공이 '웹'쪽이라 유통사업부 홈페이지를 만드는 데 차출됐다.
형은 낮에 생산팀 작업자로 근무를 하고 매일 새벽까지 유통사업부가 차려진 출하검사실 2층 사무실에서 홈페이지 제작에 몰두했다. 몇주간 그렇게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채 일하고 있는 형이 안쓰럽기도 했다. 그래도 홈페이지 제작이 완료되면 현장을 벗어나 유통사업부에 그 형의 자리가 생길줄 알고 조금만 더 힘내라며 응원해줬다.
얼마 뒤 홈페이지 제작이 완료되고 유통사업부 구성원 명단에서 형의 이름은 찾을 수가 없었다. 대신 형과 같은 대학을 다니고 있던, 내 고등학교 시절부터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의 이름이 명단에 올라 있었다. 그 친구는 형이 홈페이지를 제작할 때 옆에서 함께 지원을 해줬었다.
그 일로 인해 그 형과 내 친구의 사이가 소원해졌고 그 이야기가 주변으로 퍼지면서 친구는 남의 공을 가로챈 파렴치한으로 매도돼 산업기능요원들 사이에서 한동안 안 좋은 소문이 돌았다. 유통사업부가 생기면서 그 형도, 내 친구도 모두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됐다. 둘과 모두 잘 지내고 싶었던 나와 다른 친구들도 둘 사이에서 아주 불편하게 눈치보며 지낼수밖에 없었다.
후배 수리사 지목권이 오롯이 나에게 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