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대기업 프린트 사업부가 해외 이전을 결정하자 협력업체였던 우리 회사의 생산직 사원들도 줄줄히 실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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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기능요원으로 내가 근무하고 있던 회사는 모 대기업의 협력업체였다. 그 대기업의 프린터와 TV, CCTV를 임가공으로 생산하는 회사였는데 내가 입사했을 당시 생산라인은 매일 잔업 스케줄이 있을만큼 바빴다.
자재과에서 그 대기업에 들어가 프린터 자재를 받아오던 '납품사원' 업무를 끝내고 CCTV 라인의 수리사가 된 뒤 바쁘던 우리 회사에도 조금씩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바로 그 대기업의 국내 프린터 생산 라인 철수 결정 때문이었다. 단가가 낮은 프린터의 경우 인건비가 비싼 국내에서 생산해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판단에서였다.
우리 회사는 매출중 상당 부분이 프린터 생산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당연히 생산직 사원들중에는 프린터 생산 라인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많았고 그 중에는 부산에서 산업기능요원이 되기 위해 올라온 내 친구들도 있었다. 윗 사람들에게는 일찌기 이야기들이 오갔겠지만 현장에는 프린터 생산 라인이 철수된다는 말이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 생산 라인은 중단됐다.
프린터 생산이 중단되고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회사에서는 인건비가 싸고 막 부릴수 있는 산업기능요원들과 외국인 근로자들만 추려 TV 생산 라인으로 보냈다. 그들로 인해 TV 생산 라인에 근무하던 일반 근로자들 역시 일자리를 잃었다.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었지만 부서가 달라서 얼굴도 잘 못보던 친구들과 그렇게 한 현장에서 근무를 하게 됐다. 친구들은 TV 조립 라인에 투입됐는데, 그때는 CCTV도 생산 물량이 줄어들어 TV 라인과 통합 관리를 하던 시절이라 매일 같이 얼굴보고 일할 수 있었다.
프린터 생산 라인에서 일하다 TV 라인으로 넘어온 사람들은 한동안 적응을 하는 데 힘들어 했다. 하지만 이내 적응을 했고 생산 라인은 빠르게 안정돼 갔다. 프린터 3개 라인이 중단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은 것 밖에는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그렇게 우리 회사 생산 라인에는 산업기능요원, 외국인 노동자, 40대 이상 주부사원이 주를 이루게 됐다. 아주 싼 인력들만 남은 셈이다. 회사에서는 어떻게든 인건비를 줄여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에 선택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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