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노동개악 법안 저지-폭력정권-공안탄압 규탄 민주노총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이희훈
또 조계종이 평화적 집회 보장을 위한 노력 이외에 민주노총에서 요청한 ▲ 노동자 대표와 정부의 대화 ▲ 정부의 노동법 개정 중단 등을 위해서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는 비판이 있다.
우선 이는 사실과 다르다. 화쟁위는 다양한 채널을 가동하며 이를 위해 노력했다. 도법 스님과 한 위원장의 대화 과정에 깊이 관여했던 정웅기 화쟁위 대변인은 정부와 사용자 측을 제외한 야권과 양 노총, 기독교 관련 단체와 민변 그리고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포괄하는 사회적 대화의 장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이 이뤄졌으며, 이 같은 노력의 결과가 앞으로 구체화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장이 마련되는 것의 의미와 효과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지만, 공론의 장이 확대됨으로써 노동법의 잘못된 개정을 막는 데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또한 노동법 연내 개정과 관련해 입법의 한 주체인 야권으로부터 구체적 내용과 공식적 형식을 통해 연내 개정 불가 방침을 받아냈으며, 이에 한 위원장은 화쟁위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사실 위 두 가지 사안은 애당초 민주노총에서 불교계(다른 종교계도 마찬가지겠지만)에 요청할 성질의 내용이 아니다. 총파업을 한다 해도 현 정권은 노동법 개정을 쉽게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어떤 사회적 주체와도, 심지어 여당과도 대화할 생각이 없다는 사실이 이미 확인됐다. 명실상부한 총파업과 양대 노총의 공동전선, 국민들의 지지 여론 등이 결합돼야 막아 낼 수 있는 과제다. 중재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중단을 요구한 것은 심정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교계의 노력으로는 현실화되기 어려운 조건이다.
마지막으로 노-자 간 모순은 화쟁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힘 있는 자본을 도와주는 것이라는 비판은 논쟁적이며, 경청할 만한 지점이 있다. 이는 "원효의 화쟁론이 적대적 모순 관계에도 적용이 될 것인가?"라는 복잡한 논점과 맞물려 있다. 논쟁적인 주제다.
이런 비판에는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하워드 진),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프란치스코 교황)는 언급이 인용된다. 나 역시 불교계나 화쟁위가 약자 편에 서서 더 분명한 목소리를 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래서 아쉬움이 있다. 이런 아쉬움이 비판으로 연결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화쟁 사상과 진보적 세계관이 상호 충돌해서, 서로를 논파하고 승리를 거둬야 하는 싸우는 관계가 아니라, 경청과 이해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본다. 이번 사태가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어려운 조건 속에서 전개되는 민주노총의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자 처지에서 보면 노동법 개정의 역사는 개선과 개악이 교차됐지만, IMF 이후부터는 줄곧 후퇴의 역사였다. 노동자가 기존 법이라도 지키기 위해 '보수적'이 됐고, 권력과 자본이 자신의 처지에서 개선을 위해 '전투적'이 돼 버렸다. "너희는 조금씩 갉아먹지만, 우리는 한꺼번에 되찾으리라"라는 노래 가사는 현실에서는 반대로 나타났다.
민주노총의 노동법 개정 투쟁은 한두 차례 집회로, 조계사 지휘부 형태 같은 비상한 대응만으로 성공하기 어렵다. 내부 단결과 외부의 지지 여론 모두가 중요한 투쟁 자산이다. 그나마 있던 야당도 엉망이 됐고, 진보정당은 아직 약하다.
16일 총파업이 예정돼 있다. 선언식 총파업을 넘어 내실 있는 장기전도 함께 준비해 주기를 바란다.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96~97년 한국 노동자들의 명실상부한 총파업도 김영삼 정권의 새벽 날치기 통과라는 극적인 형식이 분노를 폭발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산별 노조나 지역에서 사전에 많은 준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명박, 박근혜 시대 이후 한국 사회의 정치사회적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는 사회적 보루가 매우 중요해졌다. 민주노총이 그 보루를 자임하고 나서야 한다. 잠재력도 있다. 성숙하고 진취적인 민주노총의 앞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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