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마당극<호미풀이>를 보는 관객들농민회 회원들과 가족들이 쌀수입 반대및 제값받기 쌀투쟁 집회와 함께 마당극<호미풀이> 공연을 보고 있다.
성장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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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마당극 공연 농촌 마당극 <호미풀이>,<아줌마만세>,<우리동네 갑오년> ⓒ 성장순
그렇게 농민극으로 시작된 우금치는 통일, 반전, 여성, 노인, 환경, 자본경쟁, 정치, 다문화 등 사회문제를 풍자한 작품과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고전, 역사, 인물, 설화, 신화까지 40여 편의 작품으로 관객을 만나왔다. 25년 동안 2700군데나 찾아다닌 공연장은 집회현장, 대학, 시민운동행사, 농촌, 산골, 아파트, 학교, 광장, 극장, 축제장, 요양원, 복지관까지 민중, 대중의 삶 깊숙한 곳이었다.
문화생활이 풍족한 21세기라고 하지만 여전히 공연을 처음 보시는 분들도 참 많다. 먹고 살아야하는 아주 치열한 현실에서 극장에서 공연을 보는 것은 어쩌면 시간과 돈의 사치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그분들 앞에서 공연하는 것이 더 보람되고 소중한지 모르겠다.
언젠가는 시장판에서 공연을 할 때였다. 부부싸움을 하는 장면인데 관객 하나가 극 중의 남편에게 바락바락 대드는 나와 남편역의 선배를 갈라놓으며, 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아니라고, 가짜로 싸우는 거라고 해도 무조건 말리며 참으란다. 웃기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마당판 한가운데 돌부리가 있다고 공연하는데 들어와 돌멩이를 치우는 관객, 심청이 젖동냥에 젖 주겠다고 불쑥 젖을 꺼내는 할머니. 쑥스럽게 공책을 꺼내 싸인 해달라는 어린아이. 죽기 전에 이렇게 재미있는 것을 보여줘서 고맙다고 눈물이 그렁한 병원 환자 그분들은 모두 아름다운 심성을 가졌고 서로 보듬고 나누는 사회를 꿈꿀 것이다.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 선우, 정환이네 이웃처럼 말이다.
마당극에 애정이 깊었던 사람들은 종종 "마당극은 끝났다. 한때의 유행이었다. 변했다"고 말한다. 7~80년대 군사정권 아래 말 한마디가 자유롭지 못했던 시절 마당극은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효자손 같은 것이었으니 그 '속 시원함'이 그리워서라면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변한다. 삐삐에서 스마트 폰으로 바뀌었고 1988년 이웃과 2015년 이웃의 모습이 달라졌듯이 심성이 변하고 풍경도 달라졌다.
우금치의 작품도 다양해지고, 표현하는 기술도 달라졌고 관객도 농촌부터 도시까지 다양해졌다. 그렇게 우금치 작품도 늘 변하고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 하지만 자본과 권력이 지배하는 개똥 같은 세상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것만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25년을 한결같이 버스 한 대에 트럭을 끌고 여기저기 공연을 다니는 것이다.
내 의지와도 상관없고 연극계 현실에 대해 무지한 친구들은 "서울로 가라", "방송 쪽으로 나가라" "'너도 이제는 떠야지"하며 애정어린 충고를 한다. 24년 동안 보따리 장사하듯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무명배우, 이미 중년이 되어 버린 친구가 측은해 보이는 모양이다.
솔직히 떴으면 하는 생각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배우니까. 그러면 부모님이 뿌듯해하실 거고 친구들도 더 자랑스러워 할 거고. 무엇보다 시민 모금으로 공간 마련하는 수고로움은 없을 테니.
하지만 나는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공연하는 이 삶이 좋다. 아마 우금치 모두가 그 맛에 사는 것이지 싶다. 너무나 솔직해서 재미없으면 재미없다고 소리치고, 슬퍼 박수 치고 웃겨서 박수 치고, 용기내서 큰소리로 배우랑 대거리 해놓고 옆 사람 호응에 쑥스러워하는, 투박한 손으로 박카스 한병 건네는 인정 넘치는 따뜻한 손맛을 느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