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철민
이신애
요즘 박철민 하면 누구나 영화 속 능청스럽고 유머러스한 캐릭터를 떠올리지만, 우금치 단원들에게 그는 90년대 초중반 모습으로 먼저 기억된다.
당시 그는 마당극계에서 스타였다. 90년대 초까지 '민주 대머리'라는 별명으로 집회현장을 쥐락펴락하던 명사회자였으며, 연극 <노동의 새벽>, <이바구 세상>, 마당극 <밥>으로 전국을 누비며 공연했다. 하지만 마당극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의외로 소박했다.
"대학 때 연극반 활동을 했었는데, 무대극을 하다가 친구들하고 마당극패 단체를 만들었어요. 그때 다섯 명이서 <밥>을 공연하면서 '이렇게 공연만 하지 말고 극패를 하나 만들자, 우리의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자, 사회의 부조리한 것들을 신랄하게 극을 통해 이야기 하면서 서로 고민하고 대화하고 한 가지 목소리를 내보기도 하는 그런 연행(演行)이 필요하다'는 식의 논리로 만들었지. 나는 원래 배우에 뜻이 있었기 때문에 선후배들이 그 뜻을 펼치자고 하니까 그래서 들어온 거 같아. 굳이 뭐 의식이 있어서, 시대적 필요로 만들었다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형들이 마당극패가 필요하다니까." 사람이 좋아서 시작했다지만,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은 어떨까?
- 마당극이 우리사회에서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하나?"당연히 필요하지. 예를 들어 서양희극은 그저 상황 자체가 만들어내는 웃음이라면 우리 민족은 옛날부터 권력을 갖고 있는 자들의 횡포를 풍자하는 일에 익숙하잖아. 이런 연희거리를 가지고 역동적인 마당에서, 지금 시대에 맞게 세상을 비틀어서 통쾌하게 풍자하는 형식의 놀이인 극은 분명히 전국적으로 필요해. 계속 유지돼야 한다고 봐."
- 요즘 근황은 어떤가? "지금은 연극 <늘근도둑이야기>, 드라마 <풍선껌>, <상상고양이>가 있고. <조선마술사>라는 블록버스터 영화가 12월 말에 개봉예정인데 유승호랑 고아라가 주연이고, 조선 마술사의 이야기야. 거기서 내가 풍물을 쳐요. 너희들도 알다시피 내가 꽹과리를 못 치는 편이잖아? 근데도 그걸 배워놓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거기서 내가 꼭두쇠(남사당패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는데, 물론 나보다 잘 치는 사람이야 많지. 그런데 배우 중에선 내가 쳐야 되는 거야. 그래도 배운 가락이 있다고 연풍대도 돌고, 휘몰이, 자진 가락들도 쳐내면서 해내니까 다들 깜짝 놀라더라고. 나는 흉내만 내고 잘 못하는 건데도. 카메라로 뭐 편집 잘하니까 괜찮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마당극 시절에 배운 꽹과리, 소리, 아니리 같은 거 섞어서 처음으로 아주 짭짤하게 잘 써먹은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이제 개봉을 앞두고 있지."
- 유명해지고 나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배우의 가장 큰 욕망은 관객, 시청자, 대중들한테 좀 더 사랑 받고, 관심 받고 싶은 건데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하면서 그게 좀 채워지니까 신이 난 건 있지. 대신 관심이 또 작아지면 어떡하지? 작품이 덜 들어오면 어떡하지? 이런 고민들은 내가 마당극 배우일 때와 무명일 때는 없었거든. 그냥 무대에서 열심히 뛰고, 그러기 위해서 준비하는 과정이나 관객을 직접 만나는 즐거움뿐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고민도 생기고….
뭐 여러 차이가 있겠지만, 다른 건 다 비슷한 거 같아. 배우라면 알잖아? 어떤 작품을 통해서 한 인물을 만나고, 하나하나 준비하고 만들어가면서 설레고, 걱정되고, 불안해하고, 그렇게 완성해서 대중들에게 선보이고 박수 받을 때, 그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거. 좀 시원치 않을 때는 지옥에 빠지기도 하고. 이런 것들은 계속 반복되는 거 같아.
무명시절, 생활고로 잠시 무대를 떠나 트럭으로 과일장사도 해보고 다른 직업을 가져야하는 것 아닌지 고민도 해봤지만, 언제나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역시 배우였다는 사람. 배우로서의 삶이 그렇게까지 좋은 이유가 뭘까?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거, 내가 그것을 하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안 고픈 거, 그것을 하느라 잠을 안 자도 덜 피곤한 거. 나한테는 그게 바로 연기인데, 연기를 늘 할 수 있는 곳이 마당이고 무대였으니까. 그게 좋아서 여기까지 온 거지. 최고의 인기를 얻어야겠다? 되지도 않겠지만 그것보다는 과정들이 신나고 행복해서 지갑이 얇아도 외롭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아.지금 하고 있는 연극도 열에 아홉 정도는 나도 모르게 힘도 들고 공연하기 싫네 어쩌네 하다가도 막상 무대에 서면 재미있게 하려고 더 까불지. 관객들은 더 크게 웃고. 그렇게 진하게 땀 빼고 술 한 잔 먹고 또 무대에 오르고…. 이게 반복되니까 이 자체가 진짜 내 삶이 아닌가 싶어. 조재현 형이 그렇더라고 '야, 이제 점점 니 연극이 돼가고 있다'고. 30대에 시작했는데, 이제 진짜 나이가 늙은 도둑이 돼가고 있다고."하긴 우리도 그렇다. <쪽빛황혼> 초연 때 노역분장을 위해 머리에 흰 칠을 하던 배우가 이제는 칠 없이도 반백이다. 그래, 그렇게 배역과 함께 늙어가는 게 또 배우의 삶이지. 지면을 빌려 우금치 선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없을까?
"동료들이나 기형이 형한테는 할 말이 없지. 다들 잘하고 있으니까. 고맙다는 말도 안 어울릴 거 같아. 내가 심취하고 매력을 느꼈던 마당극이 더 작아지거나 없어질 거라고 우려도 했었는데, 아직도 굳건하게 하고 있다는 자체가 참 신기하고 놀랍고 그래. 이게 끊임없이 계속돼서 우리가 그렇게 말했던 역동적으로 대중들과 소통하면서 희로애락을 주고받기를 바라지. 그건 우금치가 잘하는 거고 또 잘 해왔으니까. 어린 후배들은 글쎄…. 관객들과 뭔가를 주고받으면서 짜릿하게 전해지는 어떤 마약 같은 걸 수시로 느낄 테니까 뭐. 어차피 프로의 세상에 들어온 이상, 본인의 색깔, 눈빛, 표정들을 좀 잘 가다듬어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자기만의 연기를 만들면 이 생활이 훨씬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마당극이 왜 필요하냐고? 일단 한 번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