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모자와 성인들조반니 벨리니, ‘성 모자와 성인들’, 베네치아 산 자카리아 성당. 노년의 조반니 벨리니는 이 그림에 그 스스로 시작했던 베네치아 화파의 여러 양식들을 통합하여 보여줍니다.
박용은
이 '산 자카리아 성당'의 제단화, '성 모자와 성인들'은 그 시도의 결정체입니다. 브루넬레스키의 투시 원근법이 완벽하게 적용된 배경의 건물. 그런데 건물에 입체감을 부여하는 것은 원근법 뿐만이 아닙니다. 건물의 층위에 따라 달라지는 색조와 빛 그리고 반구의 천장에 인용된 '산 마르코 성당'의 모자이크가 그 입체감에 깊이를 더하죠.
비잔틴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이 함께 일구어낸, 그 조화로운 공간 앞에 또 다시 베네치아 화파의 유려하고 우아한 색채가 어우러집니다. 말할 수 없이 온화한 색조를 드러내는 인물들의 의복. 다양한 색채는 언뜻 화려해 보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리고 서로 교차하지 않는 인물들의 어딘지 우울한 시선과 표정에 이르면 심오한 느낌마저 듭니다. 그러다 문득, 성모자 아래에 앉아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는 천사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전율이 일어날 수밖에 없죠.
베네치아 화파의 창시자, 조반니 벨리니는 오랜 활동 기간 내내 유화 물감의 다양한 색채 효과를 실험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빛과 음영, 형상과 공기를 융합하여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제시한 스푸마토와 비슷한 효과도 만들어냈죠. '성 모자와 성인들'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부드럽고도 따스한 분위기는 벨리니의 끊임없는 실험의 결과물인 셈입니다.
이 아름다운 그림 앞에서 나는 조금전 바깥에서 만난 안개를 떠올립니다. 바다에서 밀려와서는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베네치아의 안개. 보통의 안개는 우울함을 몰고 오지만 이 시기 우울함은 사람을 갉아먹는 것이 아니라 흔히 창조적 상상력을 가진 천재의 특성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벨리니는 어쩌면, 세계의 법칙과 질서를 발견하고 그것을 아름답게 묘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천재적 예술가(혹은 그 자신)의 구도적 자세를 앞쪽 좌우의 성 히에로니무스와 성 베드로를 통해 표현한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늘 외부의 안개에 휩싸일 수밖에 없지만, 결국은 찬란한 문화의 도시를 일구어낸 베네치아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