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메뉴가 테이블 마다 놓여있었다. 고기와 생선으로 메인 메뉴가 구분되며, 난과 차파티와 비슷한 종류의 파파덤(Papad)도 맛볼 수 있었다.
정수지
나는 가만히 쿠루티를 보며 앉아있다가 현기증을 느꼈다. 곧 쓰러질 것 같다는 생각에 마침 지나가던 산디의 남동생에게 다가가 약국이 어디 있는지 물었다. 산디 남동생 수만은 내 얼굴을 보더니 깜짝 놀라며 어디가 아픈지 물었다. 나는 감기기운이 심해진 것 같다고 말하자 그는 자신을 따라오라며 나를 오토바이에 태웠다.
"왜 아픈 걸 말하지 않았어요? 당신은 아프면 큰일나요." 그는 걱정을 하면서 소리쳤다. 나는 단순히 감기라고 말했지만 그는 자신에게 나를 돌봐야 하는 임무가 있다고 반복했다.
"당신은 우리의 소중한 손님입니다. 멀리서 왔는데 아프면 큰일납니다. 제겐 당신의 건강을 돌봐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나는 그의 말이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형의 결혼식은 보지도 못하고 멀리서 온 손님이라는 이유로 나를 챙겨야 하는 부담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아프지 말라는 말을 계속했다. 다급한 마음에서인지 그는 점점 속력을 올렸다. 땀이 범벅이 된 그의 허리춤을 꽉 잡았을 땐 금방이라도 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그는 나를 데리고 간 건물 1층에서 미친듯이 문을 두들겼다.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는 건물 뒤편에 있던 약국으로 달려갔다. 그는 약사에게 무언가 물어보고서 다시 아까전 그 건물 2층으로 올라갔다. 다시 한참동안 문을 두들기자 한 남자가 나왔다. 수만은 그 남자에게 일방적으로 말을 쏟아냈지만 결국 돌아서며 나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1층에 있던 병원 운영시간이 다 되어서 2층에 살고 있는 의사를 찾아갔던 거야. 의사는 진료시간이 끝났다며 나를 계속 돌려보내려 했어. 진료를 할 수가 없다고 하네. 약국에서 약을 사면 된다고."나는 수만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진심으로 챙겨줘서 고맙다고 전했다. 감기 기운이 심하긴 했지만 큰 병은 아닐테니 약국에서 약을 사먹자고 말했다. 그에게 건네받은 네 가지 종류의 약을 바로 털어 먹고서 다시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결혼식장 1층에서는 신랑 신부에게 인사를 끝낸 사람들이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2층 신부대기실에서는 하객들이 끊임없이 줄을 지어 선물을 주면서 인사를 했다. 식당 규모도 200석 정도로 꽤 컸으며 계단까지 줄서있는 사람들도 어림잡아 50명은 넘는 듯했다.
쿠루티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 인형처럼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하객들과 사진을 찍고 인사하기를 반복하는 행렬은 끊이질 않았다. 저녁식사를 먹으러 갔지만 여전히 입맛이 없어서 한숟갈 뜨고서 다시 쿠루티가 있는 신부대기실로 올라왔다. 쿠루티 옆에는 어느새 하객들이 놓고간 선물들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이게 다 뭐야? 진짜 선물 많이 받았다."아마 대부분 사리일거라고 말하는데 평생 입어도 모자랄 사리를 다 받은 듯 했다. 식이 끝나고 산디의 식구들이 나에게 몰려와 안부를 묻는다. 나는 정말 괜찮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서 놓아주시질 않았다. 아버지도 먼 여정에 고생했다며 나를 걱정해 주신다. 갑작스레 내가 눈물을 글썽이자 산디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나를 동시에 안아주셨다. 두 분의 따뜻한 품이 좋아서 한참을 안겨 있었다.
방으로 돌아와 누웠는데 더워서 숨쉬기가 힘들었다. 프랑스 친구들에게 함께 자면 안 되냐고 묻고 싶다가도 좀 참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연인이었던 두 사람은 여행 내내 나와 한 방을 썼다. 지금이라도 둘만 있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데 누워있으니 눈물만 흐른다.
지금은 아파서 힘들고 더워서 괴롭지만 마음에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외로운 타지에서 나를 챙겨주고 아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다. 더워서 헉헉거리면서 잠을 이루지 못해 밖을 나왔더니 마침 수만이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내가 어딜 가냐 묻자 그가 나에게 손짓을 하며 말했다.
"너무 더워서 다들 옥상에서 자고 있거든. 시원해. 너도 옥상에 와서 자." 옥상에 올라가니 잘 곳이 없을 정도로 여기 저기 사람들이 누워있었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 하늘을 바라보자 이보다 더 아름다운 밤을 본적이 없는 듯하다. 셀 수 없는 별 무리들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도 생기롭게 빛나고 있었다. 동물의 울음소리, 사람들의 코 고는 소리가 점점 귓가에 선명히 울려퍼진다.
이 지독한 더위 속에도 생명이 살아숨쉬는 생동감이 전해졌다. 여전히 잠을 잘 수 없는 더위에 멀뚱히 서있는 지금, 잊을 수 없는 따뜻함과 묘한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야생의 밤을 만끽하는 중이다. 내일이면 이마저도 돌아가고 싶은 소중한 추억이 되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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