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디가 쿠루티를 위해 준비한 웨딩카. 나는 영광스럽게도 산디 부부와 함께 소나무키를 가는 길에 탑승했다.
정수지
산디의 식구들과 친척들까지 모두 한 비행기를 타서 그런지 전세기를 탑승한 기분이다. 아마다바드에서 콜카타 (Kolkata)까지는 비행기로 3시간. 콜카타 공항에 도착하자 큰 간판 속에 마더 테레사 얼굴이 보였다. 콜카타에 위치한 마더 테레사 하우스는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배낭여행객들이 자원봉사를 위해 머물고 있다. 내가 콜카타에 간다면 가장 들르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산디가 살고 있는 소나무키는 콜카타에서도 3시간 30분이 떨어져있다. 잠시 휴식을 위해 차를 멈춰 세운 곳은 작은 노점상들이 줄지어 서 있는 인도식 휴게소. 다들 짜이 한잔을 해야겠다며 주문을 하는데 솔직히 잠시 고민에 빠졌다. 짜이를 끓이는 큰 가마솥 입구에 파리 수십 마리가 앉아있어 위생이 염려되었다.
감기 기운에 배탈까지 겹친다면 큰일나지 않을까? 그런데 차안에서 콜록이던 내가 걱정된다며 산디의 아버지는 제일 먼저 내게 짜이를 건네주셨다. 그 마음이 감사해 거절할 수 없이 전부 마셔버렸다. 잔을 비운 뒤에 주인에게 건네주니 그냥 손가락으로 바깥을 가리킨다. 무슨 의미일까? 산디에게 물어보자 그냥 버려도 되는 컵이라고 말했다.
"이 토기 그릇을 그냥 버린다고? 너무 멀쩡하잖아? 씻어서 다시 쓸 수 있는 거 아니야?"산디의 말로는 버려도 환경에 나쁘지 않고 (황토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만들기도 편해서 짜이를 마실 때 가장 유용하게 쓰이는 잔이라고 대답했다. 주변에 아무리 찾아도 휴지통이 없어 컵이 가장 많이 쌓여있는 곳에 그냥 올려놓았다.
자정이 다 돼서야 도착한 소나무키. 가로등도 없이 칠흑같은 어둠만 깔려져 있다. 산디 아버지를 따라서 들어간 낡고 허름한 건물. 문을 열자마자 사실 표정 관리가 안 되었다. 습기에 찬 벽은 곰팡이와 얼룩으로 변색되어 있고 그 위를 작은 도마뱀들이 기어다니고 있었다. 케케묵은 담요 하나가 침대에 놓여져 있지만 절대 덮고 싶지 않았다. 인적이 느껴지지 않는 굉장히 오래된 방이었다.
안토니는 괜찮다며 안으로 들어갔지만 나와 델핀은 도마뱀 때문에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다시 뛰쳐나왔다. 산디 아버지는 안 되겠다며 우리를 다른 곳으로 안내하겠다고 했다. 내가 무례했던 것은 아닌지 여기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산디 아버지께서 내 어깨를 토탁이시며 말씀하셨다.
"소나무키는 굉장히 작은 시골마을이야. 대도시가 아니라서 이곳에는 호텔이 없어. 우리가 여기서 제공해줄 수 있는 건 작은 로지(Lodge, 간이 숙박 시설)뿐이야. "두 번째 들른 숙소에선 망설임없이 가방을 풀어버렸다. 그렇게 방 두 개를 받고서 안토니와 델핀과는 처음으로 떨어져 투숙했다. 불을 켜면 나방떼가 미친듯이 빛을 향해 돌진한다. 침대 위 전등이라 벌레가 나에게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대충 땀만 씻어내려 샤워를 하는데 이상한 냄새가 났다. 손으로 물을 받아서 확인하니 황톳빛 녹물이었다. 세면대 물은 그나마 괜찮아서 대강 손으로 받아가며 몸을 씻어내었다.
침대에 누워서 잠을 자려는데 에어콘 돌아가는 소리가 무섭게 들려왔다. 마치 태풍이 몰아치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인도에 와서 처음으로 혼자 방을 쓰게 되었다. 현지인의 숙소에서도 집주인 친구와 함께했고, 그후에는 델핀과 안토니와 줄곧 한 방을 썼다. 이상하게 혼자가 된 지금 굉장히 어색하고 낯설게 느껴졌다.
방 분위기가 스산하고 시설도 불편한 것이 많았다. 하지만 그보다 나를 더 심란하게 만든 것이 방금 전 내 행동이었다. 혹시 산디 아버지께서 불쾌하시진 않았을까? 어깨를 토닥여주시며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표정이 계속 떠올라 쉽사리 잠들 수가 없었다.
5성급 호텔에서 느꼈던 만족이 평생 지속되는 것은 아닐테다. 지금 이곳에서 느끼는 불편함은 순전히 내 마음의 문제이다. 뛰쳐나가 하소연을 한다면 나는 호텔만 찾아다니는 여행만 해야할지도 모른다. 내가 살아왔던 환경도 아닌 방금 전까지 누려왔던 것을 그리워하고 있다. 사람이 이렇게 간사할 수가 없다.
인도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마음을 단련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을 지녔다. 어디로든 도망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다가도 조화를 이룰 수 있다며 나를 시험하게 한다. 적응하지 못하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손으로 우걱우걱 밥을 쑤셔넣으며 해맑게 웃을 수도 있는 곳이 바로 인도이다.
나는 소나무키에서 최고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내 몸 편히 누울 곳과 이 무더운 밤을 견디게 해줄 시원한 바람까지 있는데 여기서 무엇을 더 바라야 할까?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주문처럼 속삭이고 있다. 이렇게 마음먹은 대로 조화를 이루어 나가면 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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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설레며 살고 싶은 자유기고가.
현재는 스웨덴에서 살면서 느끼는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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