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대 대통령선거 이틀을 앞둔 지난 2012년 12월 17일 오후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 문화의 거리에서 열린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의 유세에서 한 시민이 박 후보 사진으로 만든 가면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새벽에 잠이 덜 깬 채 머리맡의 전화기를 집었다. 습관처럼 뉴스 사이트를 열자, '두둥!' 대통령의 발언이 뜬다. 눈동자가 커지면서 잠이 확 달아난다. 입에서는 한숨 섞인 탄식이 흘러나온다.
"또 시작했구나..."
지난 24일, 박근혜 대통령은 예정에도 없던 국무회의를 자청했다. 그리고는 이 자리에서 11·14 민중총궐기 대회를 "불법 폭력 사태"라 비난하며 "복면 시위는 못 하도록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더 나아가 "IS(이슬람국가)도 지금 얼굴을 감추고 그렇게 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형식과 내용이 따로 노는 아주 독특한 어법을 구사한다. 말투는 피를 토하는 듯 강경하지만, 정작 내용은 애매하고 모호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IS가 "얼굴을 감추고 그렇게 하고 있지 않느냐"의 '그렇게'는 대체 무엇을 지칭하는 것일까?
해당 테러단체가 권위주의 정부의 반서민 정책에 항의해 집회를 열고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대통령 눈에는 자신에 반대하는 국민이 '테러리스트'로 보이는 것일까? 그것도 최근 프랑스에서 130여 명을 살해하고 300여 명을 다치게 한 그 잔혹한 테러집단 말이다.
대통령이 이해할지 모르겠지만, 테러단은 얼굴을 가리든 드러내든 테러집단이고, 시위대는 얼굴을 가리든 드러내든 시위 중인 국민이다. 테러는 형법과 도덕이 금하는 극악무도한 범죄고, 시위는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다. 이 차이가 이해 안 되시는가?
떳떳하면 왜 얼굴을 가리느냐고? 물론 이렇게 주장할 것이다. '시위'가 문제가 아니라 '폭력시위'가 문제이며, 떳떳하다면 얼굴을 가릴 필요가 있느냐고 말이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시위현장에 가보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인터넷에서 1980년대 민주화 운동 사진을 검색해 보라. 전투경찰과 맞서는 젊은이들 다수가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있다. 이들이 떳떳지 못한 일을 벌이고 있었을까? 이들이 폭력적 테러집단이었는가? 80년대 시위대가 얼굴을 가린 첫 번째 이유는 마구잡이로 쏴대는 최루탄과 '지랄탄' 때문이었다.
폭력시위? '과격함'으로 말하면, 70~80년대의 운동은 오늘날의 시위와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그 당시에도 정부와 보수언론은 시위 참여자들을 '폭도'로 매도하곤 했지만, 감히 누구도 이들을 '테러집단'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이 발언이 용기에서 나온 게 아니라, 무지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민주국가의 지도자로서 상상할 수 없는 심각한 무지 말이다.
오늘날 우리는 모두 안다. 당시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던 사람과 이들을 진압하던 공권력 가운데 누가 역사 앞에 더 떳떳한지 말이다. 소위 '민주화'되었다는 1980년대 후반 이후 30년이 지났는데도, 왜 이 나라의 시위대는 왜 여전히 코와 입을 가리는 것일까? 시위를 대하는 정부와 공권력의 사고방식이 80년대와 같기 때문이다.
이들은 과거 독재 시절에 그랬듯, 시위는 무조건 봉쇄하고, '액체 최루탄'인 물대포와 캡사이신을 마구잡이로 쏴댄다. 게다가 현재의 한국 경찰은 80년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무기로 시위대를 위협하고 있다. 고성능 디지털카메라로 무장한 경찰의 무차별적 채증과 반인권적으로 활용되는 첨단 안면인식 소프트웨어가 그것이다.
이 두 가지 기술이 권력에 의해 악용될 때 국민의 기본권은 직사 물대포 앞에 놓인 촛불 신세가 되고 만다. 경찰에 실시간 감시되고 영구 기록된다는 사실 자체가 표현의 자유를 심각히 위축시키는 '겁주기 효과(chilling effect)'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부작용은 막연한 우려가 아닌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짐이 곧 법'인 이상한 '민주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