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농민 백남기씨(69세)가 경찰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직후 구조에 나선 한 시민(빨간 비옷)이 강한 물대포에 맞아 백남기씨 쪽으로 쓰러지고 있다.
이희훈
새누리당은 13만 명이 모인 시위에서 분노의 크기를 가늠하기보다는, 그 분노를 축소하고 폭력으로 덧칠하기 바쁘다. 이 기회에 동료를 때린 패륜 시위대로 몰아, 교과서 국정화의 수세 국면을 한꺼번에 뒤집어 보겠다는 얄팍한 술수도 읽힌다. 옹졸하다. 집권 여당의 포용력과 국정 장악 능력은 여전히 민심을 둘로 갈라 자기 편을 만드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열흘간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대통령의 인식도 별반 다르지 않다. 24일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14일 민중총궐기 투쟁을 불법 폭력 시위로 규정한 뒤, 불법을 조종하고 폭력을 부추기는 세력들을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하게 처리할 것을 주문했다. 또 통진당 부활, 이석기 전 의원 석방을 요구하는 정치적 구호까지 등장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복면 시위를 못 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여당이나 정부의 주장은 옳지 못하다. 사실관계도 모순투성이며 일방적이다. 13만 명이 모인 14일 민중총궐기의 원인 제공자는 누가 뭐래도 박근혜 정부다. 국민의 뜻에 반하는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 노동개혁이라는 미명 하에 노동 악법 밀어붙이기, 농민 생존권은 안중에도 없는 자유무역협정 추진 등, 숱한 패정이 국민을 화나게 했고 서울 광장에서 그 분노가 드러난 것이다. 민주노총·전교조·전농이 아무리 인원을 동원했다고 해도, 박근혜 정부의 나쁜 정치가 없었으면 13만 명은 어림도 없는 일이다.
농민이 재벌 위주의 FTA 협상을 규탄하기 위해 모이고, 노동자가 값싼 노동력과 손쉬운 해고를 목표로 하는 노동악법을 거부하기 위해 단결하는 것은 생존권 투쟁이다. 민생과 경제 성장을 입버릇처럼 되뇌는 정부가 농민·노동자의 삶의 절규를 불법으로 몰아붙이는 건 사리에 맞지 않는다.
또 교과서 국정화 반대 여론이 찬성 여론보다 많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여론에 눈감고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국정화 작업에, 국민들의 저항은 기껏 광장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었다. 이마저도 불법이라면 국민들을 제 목소리를 낼 방법은 어디에 있는지 묻고 싶다.
국민이 테러리스트? 대통령의 무서운 궤변